“자아, 넘어간다. 아, 뭣들 하고 있느냐? 얼른얼른 일어나.” “아이고, 죽겠다. 줄 좀 천천히 넘겨라.”
이 소리는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공동체 논에서 손모를 심으면서 줄잡이와 모를 심는 일꾼들 사이에 벌어지는 실랑이입니다.
못줄잡이는 빨리빨리 심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모를 심는 사람은 허리 한번 제대로 못 펴고 정신없이 넘어가는 못줄을 천천히 넘기라고 아우성이고.
일년 농사 중에 가장 중요하고, 재미있고, 힘든 일이 있다면 모내기다. 공동체에서는 기계(이앙기)를 쓰지 않고, 손으로 모를 심기 시작한 지가 십년이 넘었다.
농약 안 치고, 화학비료 안 주는 유기농법으로 벼농사를 지으려면 모도 작게 잡고 심어야 하고, 모 사이 간격도 넓어야 좋다. 그런데 이 기계라는 것은 내가 심고 싶은 대로 조정할 수가 없다. 그저 기계가 정해준 틀대로만 심어야 한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손으로 모를 심는 것이다.
손으로 심으면 간격도 내 마음대로, 모 개수도 내 마음대로 정해서 심을 수 있지 않을까? 처음 몇 해 동안 우리 식구들과 공동체에서 독립한 식구들만 모여서 손모를 냈다. 며칠씩 걸렸다. 그러다가 공동체에 일손 도우러 오는 이들이 생겼다. 보리출판사 식구들, 수유+너머, 문턱 없는 밥집 등 많은 사람이 모여서 모내기를 함께하게 된 것이다.
올해는 우리 중등부, 고등부 아이들까지 늘어나서 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내기를 했다. 이런 경우를 모보다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사람들의 모내기 실력. 처음 모를 심는 사람들의 모내기 실력은? 자동차 운전으로 따지면 왕초보 운전이다. 왕초보들은 특징이 있다.
첫째,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빨리빨리 심는다고 아무리 소리쳐도 끝까지 천천히, 꽃밭에 꽃 심듯이 조심조심 천천히 심는다. 둘째, 절대 깊이 심지 말고, 살짝 붙여만 줘야 모가 뿌리내리는 데 좋고, 잘 자란다고 강조해도 불안한 것인지 손힘이 센 것인지 꾹꾹 눌러서 깊이 심는다. 셋째, 두세 개씩 적게 심어야 모가 건강하 게 자라고, 새끼를 많이 쳐서 수확도 많이 난다 잘 알려줘도 많이 심으면 수확도 많이 나겠지, 혼자 착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신없이 넘어가는 못줄에 언제 모 개수 세고 있느냐. 에라, 모르겠다! 손에 잡히는 대로 꽂고 보자. 열 개고 스무 개고 제 마음대로 심는다. 넷째, 세모지거나 굽어진 논은 줄만 잘 서면 일찍 끝나서 쉴 수도 있는데 왕초보들은 줄도 잘못 서서 끝까지 남아 제멋대로 심어 놓는다. 그러고 나서 마치 자기가 모내기 다 한 것처럼 흐뭇하게 웃는다. 남 속 터지는 것도 모르고.
어쨌거나 저쨌거나 모를 잘 심든, 못 심든 이 왕초보들 덕분에 논 70마지기 1만4000평을 이틀 만에 다 심었다. 모를 심어놓고 논을 바라보면, 내가 심은 모가 잘 자라서 가을에 거두어들일 수 있을까 걱정이 되지만, 다행히도 모들은 건강하게 자라서 벼가 되고, 벼는 다시 나락이 되어 공동체 창고를 가득가득 채워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왕초보들 고생했어요. 내년에는 잘 심을 수 있겠지요.
김희정 변산공동체 대표
한겨레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변산공동체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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