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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병 선생님이 공동체를 만들면서 세운 농사원 칙이 몇 가지 있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다. 항생제나 성장호르몬이 들어간 사료를 먹인 축사에서 나온 퇴비를 쓰지 않는다. 비닐을 쓰지 않는다. 고추·양파·배추 등 돈이 되는 작물보다는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쌀·보리·밀·콩 등 식량작물 중심으로 농사를 짓는다.

모내기도 끝났고, 보리·밀도 식구들이 낫으로 베어서 요즘은 보기 힘든 옛날 탈곡기로 탈곡까지 끝냈다.

이제 밭매기를 할 때다. 풀밭이 아닌 땅에 씨를 뿌리고 자랐으면 소먹이도 되고, 나름 아름다운 풍경을 뽐내며 사랑받았을 텐데 밭으로 들어온 순간 눈엣가시요, 있어서는 안 될 미운털이 잔뜩 박힌 잡초가 되고 만다. 마을 어른들은 풀을 징그럽다고 하고 원수 보듯이 한다. 눈에 띄는 대로 바로 뽑아내거나 농약을 쳐서 풀이 얼씬도 못하게 만든다.

공동체는 어떨까? 어떤 이는 <잡초는 없다>는 책을 내서 쏠쏠하게 재미를 봤지만 잡초가 없긴 왜 없나? 밭 여기저기에 널린 게 온통 잡초인데. 공동체 초기에는 밭농사가 잡초농사였다. 밭은 넓고 농사일은 처음이라 풀을 잡는 법을 몰랐다.

작물과 풀이 함께 자랐고, 콩이나 고추보다 풀이 더 커버려 콩밭인지 풀밭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공동체에 일손 도우러 온 손님한테 점심때 먹을 고추를 따 오라고 했는데 고추밭을 찾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

밭매기는 웬만한 인내심이 아니면 견디기 힘든 일이다. 특히 골반 미발달로 쪼그려앉기에 젬병인 남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공동체 젊은 총각들. 처음에는 ‘이까짓 거 뭐’ 하며 달라붙어 열심히 맨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리에서 일어나는 횟수가 늘어나고 먼 산을 바라보며 한숨을 자주 쉰다. 담배 피우는 횟수도 늘어난다. 두어 시간 지나면 무릎과 허리는 점점 더 아파 오지, 한여름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는 숨 막히게 만들지, 땀은 뚝뚝 떨어지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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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는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서서 매는 편한 방법은 없을까? 다른 할 일 없나? 밭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불행하게도 그런 일은 생기지 않는다. ‘딸깍이’ ‘풀밀어’라고 서서 풀을 매는 유럽에서 들어온 농기구가 있는데 딸깍이는 풀이 커버리면 별 쓸모가 없다. 풀밀어는 큰 풀도 맬 수 있지만 이 또한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나 우리 조상의 지혜가 듬뿍 담긴 호미가 최고다.

콩밭은 넓기도 하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죽어라고 매는 것 같은데 끝이 보이려면 아직 멀었다. 대충 하다가 공동체에서 밭 잘 매고 엄하기로 소문난 우리 마누라한테 걸리면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 이제 아예 땅바닥에 주저앉아 밭을 맨다. 어떤 남자 손님은 얼마나 힘들었는지 드러누워 일하다가 혼나기도 했다.       

몸이 점점 힘들 때쯤 되면 내가 한마디 한다.

“야 열심히 해봐, 나처럼 십년 넘게 밭 매다 보면 여자처럼 골반이 발달해서 별로 힘들지 않어야. 글구 말이여, 도 닦는다 생각하고 집중해서 해봐. 정신수양에도 참 좋은 일인게.”

올여름은 작년보다 덥다는데 공동체 젊은 총각들 밭 매다가 도망가지나 않을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한여름 콩밭 안 매본 사람하고는 농사에 대해서 말을 하지 말어.


김희정 변산공동체 대표

한겨레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변산공동체 이야기입니다.


보리

보리 2010-07-29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고 출판의 빈 고리를 메우자. 수익이 나면 다시 책과 교육에 되돌리자. 보리출판사의 출판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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