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처가에 가면 장인어른이 나무 엄마(나와 같이 살고 있는 여자분)를 불러다 놓고 말씀하셨다.
“죽어라고 일해도 니 앞으로 재산 하나 안 생기는 공동체에서 얼른 나와라. 지금이야 젊으니까 여러 사람이 어울려 사는 게 재미있고 좋겠지만 나이 들면 어떻게 할래. 자기 재산이 있어야 늙어서 고생 안 하고 편안하게 산다. 김 서방은 택시 운전이라도 하고, 니는 학원강사라도 해서 돈을 모아라. 그리고 나무도 제법 영리하게 생겼는데 학교에 보내서 공부를 시켜야지 어째서 학교를 안 보내느냐?”
공동체에 대해서 아무리 설명을 해도, 나무는 학교에 안 보내는 게 아니라 공동체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제는 장인어른이 무슨 말씀을 하시면 그저 ‘예, 예’ 대답만 하고 조용히 앉아서 술만 마시다 온다. 이처럼 나이 드신 분들에게 공동체는 낯선 곳이다. 사이비 종교집단이 아닌지 의심하는 분도 있다. 그분들 눈에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 사람들이 농촌에서 힘들게 농사짓는 게 안쓰럽고 한심하기도 할 것이다.
공동체가 처음 이곳에 터를 잡았을 때 마을 어른들 사이에 떠돈 이야기들이 그랬다. 가장 황당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전교조를 믿는 종교집단’이라는 것이다. 엥? 전교조가 종교단체였나? 다른 한 가지는 “공동체에 들어가려면 윤구병한테 가입비를 몇백만원씩 내야 한디야.” 이처럼 공동체는 우리 사회에서 아직은 낯설고, 신기하고, 확인되지 않는 온갖 소문들을 만들어내는 대상이다. 변산면 사람들한테 공동체 식구들은 좋은 안줏거리다. 딱히 할 말이 없을 때 공동체 이야기가 나오면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들어서 우리도 알지 못하는 이야기가 끝도 없이 만들어진다.
공동체, 말 그대로 같이 일하고, 같이 밥 먹고, 재산을 네 것, 내 것 나누지 않고 모두가 공유하는, 한 식구처럼 사는 곳이다. 그래도 남자· 여자 잠은 따로 자고, 결혼하면 내 남자, 내 여자는 있다. 딱히 믿는 종교나 이념이 없고 여럿이 함께 모여 농사짓고 사는 게 즐겁고 행복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밖에서 보면 개인 생활도 없고, 개인 재산도 없이 일만 하는데 어찌 행복할까 싶지만, 공동체 식구들은 다들 즐겁고 행복하다. 도시에 서 사는 사람들은 몸은 편할지 모르지만, 하루하루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편한 사람이 드물다. 그렇지만 공동체에서는 경쟁이 없다. 그저 하루 열심히 몸 놀려서 일하면 마음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고, 여러 사람과 즐겁게 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우리 식구들이 먹고살 만큼의 양식과 생활비는 생긴다. 특히 아이들에게 공동체는 천국이다. 시험도 없고, 하기 싫은 공부는 안 해도 된다. 하루종일 뛰어놀 수 있다. 주위에는 늘 보살펴주는 형들과 삼촌, 이모들이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 아이들의 얼굴은 참 밝다. 늘 조잘조잘 잘 떠든다. 어른들도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저놈들이 얼른 자라서 공동체 일꾼으로 함께 농사짓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모습이 다 다르다. 우리 식구들이 남들에게는 유별난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그저 지금처럼 사는 것이 행복한 보통 사람들일 뿐이다.
김희정 변산공동체 대표
한겨레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변산공동체 이야기입니다.
보리 2010-07-29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고 출판의 빈 고리를 메우자. 수익이 나면 다시 책과 교육에 되돌리자. 보리출판사의 출판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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