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시작됐다. 중등부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고등부는 자신들 몫의 논과 밭이 있기 때문에 방학이 따로 없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로 늘 시끄럽고 북적대던 공동체도 당분간은 조용하고 평화(?)롭다.
묘한 것은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리면 공동체가 낯설고 썰렁하다는 것이다. 밥 먹을 때가 되면 우르르 몰려와 시끄럽게 떠들어야 식당 분위기가 살아나는데 어른들만 조용하게 밥을 먹다 보면 살아 있다는 느낌이 안 든다. 아이들이 있어야 웃을 일이 생긴다는 마을 어른들 말씀이 실감나게 느껴지는 게 바로 방학 때다. 아예 방학을 없애버려?
핑계는 얼마든지 있다. “이놈들아 농사짓고 사는데 방학이 어디 따로 있고, 토요일, 일요일이 따로 있냐? 방학 때는 풀도 안 자라고 쉰다더냐? 비 오는 날이 쉬는 날이고 기나긴 겨울이 방학인 것이여!”
공동체 초기에 우리 식구들 가운데 주말에는 일하지 말고 도시 사람들처럼 쉬자고 주장했던 사람도 있었다. 윤구병 선생님이 대답하기를 “그래, 주말에 하느님이 풀도 안 자라게 해주고 작물도 쉬게 해주면 우리도 놀자.” 그렇네.
공동체 학교는 대안학교이지만 다른 곳과 많이 다르다. 학생들이 있으니 학교 같기도 하고, 사는 거 보면 저게 무슨 학교야 의아스럽기도 하고, 공동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헷갈리기 마련이다.
공동체 학교에는 교실이 따로 없다. 도자기 수업은 도자기실에서, 음악은 음악실에서, 검도는 강당에서, 철학·역사·국어는 아무 데서나 한다. 추우면 기숙사 방에서, 따뜻하면 도서관이나 밖에서 수업을 한다. 농사일은 수업보다 우선한다. 과목마다 선생님이 있지만, 아이들은 공동체 식구들과 공동체를 찾아오는 손님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운다. 수업도 해마다 다르다. 작년에는 영어, 수학, 과학이 있었는데 올해는 없다. 아이들과 밴드를 하던 음악 선생님은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게 됐다. 무엇 하나 정리되어 있는 게 없다. 한마디로 막 나가는 학교다.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다. 일 년에 두어 번 학교에 찾아올까? 아이만 덜렁 맡겨 놓고 신경을 안 쓴다. 우리는 오히려 그게 더 편하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 농사짓는 학부모들은 틈만 나면 아이들을 불러낸다. 오늘은 모 심어야 하니까, 고추 심어야 하니까, 시금치 작업해야 하니까 아이들 몇 명만 보내 달라 부탁을 한다.
너무 자주 불러내서 제발 애들 좀 그만 부려 먹으라고 말리기도 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누구네 집에 일하러 가자고 하면 좋다고 야단이다. 아마 공동체에서 못 먹게 하는 온갖 불량 식품들이 나오는 게 틀림없다.
아이들은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소 꼴 베라 하면 모두 밥 먹기 전에 낫 들고 풀을 벤다. 하루종일 모내기를 할 때도 있다. 무슨 일이든지 열세 명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즐겁게 일하고 뚝딱뚝딱 금방 해치운다.
교육이란 게 뭘까? 글쎄, 우리 식구들이 교육전문가가 아니라 무어라 쉽게 말하기 어렵다. 하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이들은 공동체 안에서 조금씩 변해가고, 성장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그런 아이들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우리 학교가 뒤죽박죽이지만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니구나’라고 느낄 뿐이다.
김희정 변산공동체 대표
한겨레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변산공동체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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