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9일, 보리 특집 강좌 <변혁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위한 우리 역사 바로 보기> 첫 강좌가 있었어요.
지하철 2호선 합정역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문턱없는 밥집> 건물 2층에서 했었는데, 미리 전화로 신청하신 분들과 이런 저런 누리집에 올린 광고를 보고 찾아오신 분들이 오셔서 강의실을 채워 주셨어요. 강좌를 연다고 홍보 한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그렇게 많은 분들이 참석하지는 않았어요. 8월에는 더 많은 분들이 오셨으면 하는 마음과, 7월 강좌를 듣고 싶었지만 강의실이 어딘지 몰라서, 혼자 들으러 가기 부끄러워서, 시간이 없어서 못 오신 분들이 계실까봐 7월 강좌 내용을 함께 나눌까 해요.
7월 강좌는 보리출판사 대표이신 윤구병 선생님이 해 주셨어요. 윤 선생님이 예전부터 관심을 갖고 계셨던 주제인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2시간 동안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처음에는 김삿갓이 쓴 시 여러 편을 우리 말로 옮겨 주셨고, 나중에는 김삿갓이 누군지, 왜 방랑을 하게 됐는지 들에 대해서 얘기해 주셨어요.
김삿갓 시를 한 번 보고 얘기를 시작할까요?
<요하패기역 우비천이응 귀가수리을 부연점디귿> 腰下佩ㄱ 牛鼻穿ㅇ 歸家修ㄹ 不然点ㄷ
한자와 한글이 섞여 나오는 언문시입니다.
소리 내서 다섯 글자씩 리듬에 맞춰서 읽어보면 재밌을 거예요. 김삿갓은 이 시를 소 끌고 낫질 하다 돌아가는 시골 불량배에게 내뱉었다고 해요. 그 뜻은 “허리 아래 낫(ㄱ)을 차고, 쇠코에는 코뚜레(ㅇ)를 뚫었구나. 집에 돌아가 몸(ㄹ)이나 닦아라, 아니면 ㄷ 위에 점(亡) 찍을라(망할라)” 입니다. 정말 그럴싸합니다. 시를 쓰고자 하는 소재나 대상에 대한 섬세한 관찰력과, 언어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 합쳐질 때 이런 시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김삿갓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풍자시, 해학시를 쓰는 방랑 시인’입니다.
그런데 김삿갓은 세도 가문으로 유명한 안동김씨 일가 가운데 장동 김씨인 김안근의 둘 째 아들로 1807년에 태어납니다. 김삿갓이 태어나고 다섯 해 뒤에 나라에서는 큰 일이 일어나지요. 1811년인데 바로 ‘홍경래의 난’입니다. 이 때 김삿갓의 할아버지 김익순은 평안도에 선천부사로 있게 됩니다. 선천은 중국과 무역을 하는 길목이고 의주와 개성상인들이 활동하는 목 좋은 곳이라고 해요. 이 곳에 부사로 있는다는 것은 뇌물을 가장 잘 챙길 수 있다는 뜻이지요. 이 때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자 선천부사 김익순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나도 혁명군 편이다.”라고 항복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점점 혁명군이 수세에 몰리고, 혁명군 지휘부 가운데 한 명인 김창시가 죽는데, 이 김창시의 목을 김익순이 돈을 주고 삽니다. 자기가 혁명군 편이라고 한 것은 거짓이고, 기회를 봐서 김창시의 목을 베왔다는 공을 올리려고 말이죠. 그러나 이 거짓말은 곧 들통이 나고 김익순은 사형선고를 받고 죽습니다. 사실 그 시대에 이런 죄를 지어 역적이 되면 일가가 모두 멸하게 되는데 김익순만 죽고 자식과 며느리, 손자는 살아남아요. 그래서 김삿갓도 살 수 있었죠.
이렇게 살아난 김삿갓은 머리가 굉장히 좋았고,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해 불교나 도교에 대해서도 공부가 깊었던 사람이라고 해요. 그런데 자기 할아버지가 얼마만큼 치사한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마음의 중심이 무너지게 됩니다. “이렇게 치사한 집안에서 태어났구나.”, “온 집안이 들고 일어나서 가렴주구를 일삼고, 파렴치하게 자기 할아버지는 적장의 목을 돈을 주고 사서 마치 제가 해낸 것처럼 공을 산 사람이구나.”라고요. 그래서 김삿갓은 방랑을 시작하죠.
<구월과음 / 九月過吟>작년구월과구월 금년구월과구월昨年九月過九月 今年九月過九月년년구월과구월 구월산광장구월年年九月過九月 九月山光長九月작년구월에도 구월산을 지나갔고 올해 구월에도 구월산을 지나갔다. 해마다 구월에 구월산을 지나니 구월산의 산빛이 내내 구월이로구나.
해마다 구월산을 지나갔다는 얘기를 담은 시입니다. 해마다 남북으로 방랑을 다녔다는 이야기지요. 이렇게 김삿갓이 쓴 시에서는 그이가 40년을 전국 각지를 흘러 다닌 행적을 잘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김삿갓이 직접 보고 들은 현실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지요.
<로상견걸인시 / 路上見乞人屍>부지여성불식명 하처청산자고향不知汝姓不識名 何處靑山子故鄕승침부육훤조일 오환고혼조석양蠅侵腐肉暄朝日 烏喚孤魂弔夕陽일촌단공신후물 수승잔미걸시량一寸短笻身後物 數升殘米乞時糧기어전촌제자배 휴래일궤엄풍상寄語前村諸子輩 携來一簣掩風霜이름도 몰라 성도 몰라 그대 고향 어드메뇨썩은 살에 파리 붙어 잉잉대는데 저녁 까마귀 외로운 넋 부르며 날아가는데볌가웃 짧은 지팡이 몸 뒤에 남기고 몇 됫박 남은 쌀은 빌어 빌어 얻었겠지앞마을 사람들아 흙 한 삼태기 떠와서 저 주검 덮어주어 바람서리 가려주오
김삿갓은 당시 민중의 삶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방랑을 하며 다니면서 본 것을 허투로 넘기지 않고 그때마다 그 모습을 민중의 편에 서서 절실하게 써 냈다는 게 이런 시에 잘 드러납니다. 김삿갓의 시는 사람들에게 알려진 시보다 안 알려진 시가 더 많고, 알려졌다 해도 제대로 번역된 시가 없다고 해요. 앞에서 본 시와 같이 김삿갓이 쓴 다른 시를 보면 세상이 뒤집혀야 한다는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시가 꽤 많고, 민중의 삶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벼룩, 닭, 개, 토끼, 고양이, 담뱃대, 목침 들을 소재로 삼아 시를 쓴 것도 아주 많다고 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김삿갓을 단순히 ‘방랑시인’, ‘풍자시인’으로 평가할 게 아니라 민중의 삶을 더 자세히 보고 시를 통해 민중의 현실을 공감하며 나아가 부패한 권력과 망해가는 나라에 대한 민중의 저항을 시 속에 담으려고 한 ‘민중시인’, ‘저항시인’으로 재평가할 수 있지는 않을까요?
윤구병 선생님은 긴 얘기 끝에 김삿갓의 가려진 점들이 좀 더 밝혀지면 좋겠다며 앞으로 청소년들을 위한 역사책을 쓸 때 이 점을 책 속에 잘 담아보겠다고 말 하신 뒤 강연을 끝내셨어요. 강연 자리가 아쉬운 분들 몇몇은 강연장 아래에 있는 문턱 없는 밥집에서 조촐한 뒤풀이 자리를 가졌습니다.
강연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일꾼이다 보니 강연이 있기 전에 미리 준비하지 못해 아쉬웠던 점들이 뒤늦게 많이 보였어요. 그렇지만 가장 아쉬운 점은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와서 들을 수 있도록 소문도 많이 내고 방방곡곡에 알렸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한 것 같아 가장 마음에 걸려요. 8월 달에는 부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이 글을 마칩니다.
보리 편집 살림꾼 이경희
보리 특집 8월 강좌 |
“나쁜 짓 하면 죽어! 한글로 읽는 도교 <권선서>의 비밀”
강사 | 이봉호 (덕성여대 교수)
언제 | 8월 12일(목) 늦은 7시
어디서 | 서울 서교동 문턱없는 밥집 2층 (지하철 2호선 합정역 2번출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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