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몹시도 쏟아졌던 7월 17일 파주 둘레 생태 기록 모임이 있었어요.
비 때문에 모일 수 있을런지 걱정이 되었지만 저희를 가르쳐 주고 계신 조영권 선생님께서
비가 오면 또 그 나름대로의 자연을 볼 수 있으니 더 좋다고 하셔서 망설임 없이 장화까지 챙겨 신고 나갔습니다.
아름답던 유수지가 메워진 현장을 다시금 보면서 아프고 화나는 마음으로 공릉천으로 갔어요.
맹꽁이들이 아주 크게 울더라고요. 잘못 들으면 오리 소리처럼 들리기도 해요.
죽어 있는 말똥게를 쉽게 볼 수 있었어요. 말똥게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습지에서 산대요. 파주는 서해와 한강이 만나 바닷물과 민물이 드나들어 말똥게들이 살기에 아주 좋은 곳이죠. 하지만 습지들이 메워지면서 말똥게 서식지도 줄어들고 있어요.
나문재는 연한 순을 뜯어 나물로도 먹는데, <할머니, 어디 가요? 앵두 따러 간다!> 책에 옥이 할머니가 넘문쟁이를 뜯어서 요리해 먹는 장면이 나와요.
공릉천을 따라 펼쳐진 논에 살고 있는 습지 식물들을 살펴 봤어요.
비가 오는데도 백로들이 한두마리씩 날아 논으로 오더라고요. 백로같은 새들은 덩치가 크고 무거워서 비오는 날에 나는 것이 무척 힘든 일이지만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엔 물고기들이 활발히 움직이기 때문에 잡아먹기가 좋대요. 그래서 백로들이 힘든데도 날아오는 거래요.
파주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고 공릉천을 따라 논이 펼쳐져 있어서 다른 지역보다 다양한 새와 곤충, 식물들을 관찰할 수 있다고 해요.
뱀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는데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엔 땅 속에 들어가 있대요. 비가 온 뒤에 피부를 말리기 위해 밖으로 나온다고 하니 다행이죠. ^^
가막사리
토종가막사리보다 미국가막사리를 더 흔히 볼 수 있대요.
왕고들빼기
논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식물이에요.
쇠무릎(소무릎, 우슬풀)
마디가 굵은 것이 소 무릎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에요.
고마리
논가에서 고마리군락을 쉽게 볼 수 있어요.
고마리 잎 가운데 진한 색 무늬가 있는 것이 보이시죠?
병이 든 것이 아니라 고마리잎의 특징이에요.
재래식 논, 친환경 논, 농약을 쓰는 논 가운데 가장 생태가 다양한 논은 어느 것일까요?
바로 재래식 논이래요. 친환경 논은 오리농법이나 우렁이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오리와 우렁이들이 풀이나 작은 생물들을 잡아 먹지만, 재래식 논은 그야말로 풀이 자라면 자라는대로 손으로 뽑아내는 논이기 때문에 가장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다고 해요.
그런데, 다양한 생명체들이 살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외국에서 들어온 동식물이에요. 이런 동식물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에 강한 생명력과 번식력을 갖게 되거든요. 단풍잎돼지풀도 아주 골치거리인 식물이라고 해요. 3~4 미터까지 자라고 번식력이 워낙 강해서 꽃피기 전에 잘라서 씨앗을 맺지 못하게 하지 않으면 대책이 없대요.
조영권 선생님이 파주에서 가장 눈맛이 좋은 곳으로 데려가 주신다고 하셔서
기대를 잔뜩 안고 따라나섰어요.
파주에서도 외진 조용한 숲으로 들어오니 파랑새도 앉아 있고 이름 모를 신기한 새소리도 들려서 마음이 편안해졌지요.
산초나무
추어탕에 넣어 먹는 산초 아시죠? 바로 그 산초나무에요. 잎을 만지기만 해도 손에서 그 향이 났어요. 잎을 따서 먹어보니 딱 기분좋을 만큼의 향이 입안에서 맴도네요.
빨갛고 예쁜 딱총나무 열매도 따먹어봤는데 맛은 없더라고요. ^^
그리고 곧 선생님이 말씀하신 파주에서 가장 눈맛 좋은 광경이 펼쳐집니다.
기대하세요!!!
와아! 파주에 이런 곳이 있다니! 탄성이 절로 나왔어요.
'와!', '와!', '와!' 소리를 몇번이나 냈는지 몰라요.
'걸어서 세계속으로' TV프로그램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풍경입니다.
임진강 한가운데 생겨난 섬, '초평도'에요.
한강에 밤섬이 있는 것처럼 임진강에도 섬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이 초평도에요.
우리가 서 있는 이곳 장산에서 보는 달이 임진팔경 가운데 하나일만큼 아름답기로 손꼽는 곳입니다.
게다가 초평도를 감싸고 도는 임진강에는 북쪽에서 깨끗한 강물이 흘러 내려와
우리나라 토종 물고기 가운데 87%가 살고 있다고 해요.
작년에 육군에서 사격연습을 하다 불이 나는 바람에 숲이 불타긴 했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섬이죠.
이렇게 아름다운 초평도 역시 언제 닥칠지 모를 개발 위기 앞에 놓여있어요.
홍수를 예방한다고 초평도를 파내서 물길을 넓히고, 초평도 안에는 청소년수련관을 지으려고 하거든요.
물길을 넓히고 둑을 쌓는 것만을 홍수대책으로 여기고 있으니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홍수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저류지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생태전문가들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물길을 물이 많으면 흘러 넘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데 어느 곳에도 흘러넘치지 못하게 둑만 높이 쌓고 물길만 일직선으로 만들면 계속해서 생각지도 못한 재앙이 터져나올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논이 많이 사라져버린 것도 물난리가 나게 하는 큰 원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논은 그저 벼가 자라 쌀을 생산해내는 땅이라고만 생각하지만, 논은 쌀 생산 외에도 여러가지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해요. 무엇보다 저수 능력, 즉 논이 담아내는 물의 양이 엄청나다고 해요. 비가 많이 오면 우선 논들이 그 물을 담아두고 거기서 넘친 물들이 강으로 흘러들게 되는데 80년대와 견주어 지금은 전국토에 논이 반으로 줄어 담아둘 수 있는 물의 양이 그만큼 줄어들어 버린 것이죠. 지금 논이 담아내는 물이 양이 충주댐 하나 정도 된다고 하니 80년대는 댐이 하나 더 있었던 것과 같은 것이죠.
이 밖에도 논은 대기 중 습기를 조절하기도 해서 더울 땐 온도를 낮춰주고, 생태계를 유지하는 일도 해준다고 해요. 논이 우리 삶과 생태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를 눈앞에 두고도 그저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바라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개발 위기 앞에 놓인 임진강과 초평도를 지켜내야만 하는 무거운 마음으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개발에 앞장섰던 나라들이 이제는 그 개발 흔적들을 뜯어내고 자연상태로 되돌리고 있는 것은 생태 교육을 받은 세대들이 자라서 사회의 주역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 윤구병 선생님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선생님, 저 요즘에 이렇게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고 있을 때가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가는 곳마다 마구잡이로 개발이 되고 땅이 발가벗겨지는데 밖으로 나가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마음은 그래도 모두가 밖으로 나가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중요한 일이야. 좋은 책을 만들어서 그 책을 보는 사람들이 해내는 일들을 생각해야 해."
"알지만 개발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요..."
지금 우리 눈앞에 벌어지는 일들을 막아내는 것이 어렵지만 우리가 만들어내는 책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땐 지금보다 나은 세상이 되어 있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돌아오는 길에 달팽이가 한가롭게 나와 있네요.
느릿느릿 어디로 가는 길인지는 모르지만 혹시나 밟힐까 길가로 옮겨 줍니다. 빠른 차만 타고 달리다 느릿느릿 달팽이를 보니 마음이 편안해지네요.
파주 장단콩 음식집에서 점심을 먹고 식당 앞에 피어 있는 능소화를 바로보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어요.
중국 황실에서 심던 꽃이라 우리나라에서도 사대부 양반들만 심을 수 있었다는 꽃, 백성이 심어 키우면 곤장을 맞아야 했다던 꽃, 예쁜 꽃에 얽혀 있는 슬픈 이야기를 나눕니다.
강을 지키고, 땅을 지키고, 생명을 지키고, 힘없는 백성을 지키는 일.
우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선 우리 둘레에 누가 사는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작아 보이는 일이지만 우리 둘레를 살펴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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