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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 남녘 땅에 허영철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공산주의자였다. 공산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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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는 공산주의 사상을 버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36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 긴 세월이었다.
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주의 강점 아래 견뎌야 했던 억압과 착취의 기간에 맞먹는 햇수였다.
‘대한민국’은 이분 이름 앞에 ‘비전향 장기수’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박정희 시절의 ‘전향공작’은 살인적이었다. ‘떡봉이’들의 매타작으로, 잔인성에서 전무후무한 모진 고문으로 이루어진 ‘전향공작’에 무릎을 꿇지 않은 ‘사상범’들, 이른바 ‘양심수’들은 떼 지어 죽어갔다.

‘대한민국’의 헌법에도 보장된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박정희 독재정권이 군화발로 짓뭉개던 시절 ‘대한민국’의 헌법을 수호하는 데 몸 바친 분들은 ‘비전향 장기수’들밖에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그 가혹한 고문을 견디고도 살아남아 나이 일흔이 넘도록 옥살이를 한 장기수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허영철 옹이 며칠 전에 세상을 떠났다. 다행히도 이분은 돌아가시기 전에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라는 자서전을 남겼다. ‘대한민국’ 국방부는 이 책을 불온문서로 낙인찍어 군인들이 보지 못하게 막았지만, 이 책은 불온문서가 아니다. 공산주의 사상을 버리지 않고도 평화주의자로서 민족 통일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소중한 우리 민족의 자산이자 현대사 교과서다.

나는 허영철 옹의 거룩한 삶의 행적과 평화로운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또 나는 G20에 속하는 나라 가운데 <공산당>이 불법화되어 있는 유일한 나라인 ‘대한민국’이 헌법에 보장된 사상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온전하게 인정하여 공산주의 사상을 지니고 있는 분들을 더 이상 ‘마녀’로 몰지 않기 바란다. 나는 공상주의자 또는 공생주의자로서 <공산당>이 합법화되더라도 그 당에 가입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러나 나는 ‘대한민국’의 헌법이 악법 가운데 악법인 ‘국가보안법’에 재갈이 물려 사상과 양심까지 탄압하는 사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이런 말을 스스럼없이 입 밖에 낼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주신 평화주의자 허영철 옹의 영전에 마음의 국화꽃을 한 송이 바친다.

‘허 선생님 고맙습니다. 저 세상에서도 이 땅의 평화를 지켜주세요.’


윤구병
보리

보리 2010-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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