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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와 옆집 아이를 넘어서

아이를 초등학교에 들여보내고 나서 부모들이 가장 많이 하는 걱정은 '내 아이가 올해 어떤 담임 선생님을 만날까?' 하는 것일 게다. 그래서 새학기가 시작할 무렵이면, 동네마다 아이 담임 선생님에 얽힌 정보를 수소문하느라 바쁘다. 그런 뒤에, 얻어들은 정보에 맞춰 재빨리 움직여야 한다. 담임 선생님이 좋아하는 것, 물건이든 뭐든 다 좋다. 이렇게 초등학교 교실은 늘 학부모들로 북적대기 마련이다. 적어도 내 아이가 기죽지 않고 한 해를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기에 우리 아이와 '옆집 아이' 담인 선생님을 견주어 보는 일도 부지런히 해야 한다. '내 아이와 옆집 아이'는 학부모들한테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한 비교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지런히 담임 선생님한테 '투자'해 보지만, 한 해 두 해 학교를 보내다 보면 '선생님들과 학교에 질렸다!'는 경험이 늘어 간다. 왜 그럴까?

열두 해 동안 만난 수십 명 선생님들 가운데, 견디기 어려운 '나쁜' 선생님 한 사람이 나머지 선생님들에 대한 기억을 한방에 날리고도 남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학교와 선생님들에 대해 몹시 비판하는 여론이 만들어진다. 우리나라 공교육은 학부모들한테 '겪으면서 쌓인 정서'에서 이미 '퇴출 대상'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학부모가 겪은 학교는 내 아이 담임 선생님을 고리로, 학교 전체로 넓어진다. 그럼 '내 아이와 옆집 아이'를 넘어서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를 제대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교사를 바꾸고, 학교를 바꾸고, 우리 사는 동네 교육 정책을 바꾸는 일, 이것이 '지방 교육 자치'가 할 일이다. '지방 교육 자치에 대한 법률'에서는 이를 위해 교육감, 교육 의원을 주민들이 직접 선거로 뽑도록 하고 있다.

'작은 대통령', 교육감이 할 수 있는 일들

그렇다면 도대체 교육감은 어떤 권한을 갖고 있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가 사는 시, 도에서 이루어지는 초등 교육과 중등 교육을 책임지는 자리, '작은 대통령'이라 할 수 있다. 교육감이 하는 일 가운데 중요한 권한만 뽑아 살펴보자.

먼저, 시.도 교육청 예산을 편성하는 권한이다. 교육감은 어떤 데 예산을 먼저 쓸지 차례를 조정할 수 있다.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교육 예산을 '아이들과 교사들이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혁신학교 설립', '초.중등학교 학생 무상급식을 확대하는 일'에 쓰겠다고 해서,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혁신학교는 학년마다 4학급 안쪽, 학급마다 25명 안팎 학생 수를 추구하는 작은 학교다. 여기에 행정 인력을 배치해서 교사들이 수업에만 충실할 수 있게 해 주고 아울러 교원 인사와 교육 과정 운영도 교사들 스스로 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시.도 교육청은 국제학교와 특목고를 세우고, 학교 안에 우열반을 만드는 데 예산을 쏟아붓기도 한다. 이름난 대학에 합격한 학생 수마다 지원금 얼마씩을 교사들한테 예산으로 지원하는 교육감도 있다. 아예 '실력 교육'을 구호로 내걸고, 초등학교 6학년이나 중학교 1학년부터 여름 방학, 겨울 방학도 없이 아이들을 '야간 자율 학습'으로 내모는 교육청도 있다. 이렇게 교육감이 어떤 교육 철학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예산 편성이 판가름 난다.

다음으로 교사, 교육 공무원에 대한 인사권이다. 교육감은 교장, 교감, 장학사, 장학관 같은 교육 전문직과 공립 유.초.중.고교 교원에 대한 인사권을 갖고 있다. '공정택 전 서울시 교육감 비리 사건'에서 보듯 교육감은 인사권을 무기로 교장, 교감을 비롯한 교사들을 한 줄로 세울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학교는 아이들, 학부모들과 함께 교육하는 것이 되지 못하고, 그저 위만 쳐다보고 가는 사람들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 '일제고사(학업 선취도 평가)'를 거부한 교사, '시국 선언'을 한 교사한테 징계를 내리는 것도, 거부할 수 있는 것도 교육감 권한이다.

다음으로 교육 과정 운영에 대한 사항이다. 일제고사, 0교시 수업 실시, 심야 보충 수업 논란이 일고 있는데, 이것은 교육감이 최종 권한을 갖는 교육 과정 운영에 대한 일이다. 교육감이 이런 문제를 아이들 눈높이에서 보고, 교사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 '제대로 된 학력을 기르기 위한 교육 과정 편성'으르 해낸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마구 밀어내고 몰아붙일 때, 시들어 가는 아이들은 어찌할 것인가.

그 밖에 조례 작성, 교육 규칙 제정 권한도 있다. 경기도 교육청이 '학생 인권 조례'를 발의한 것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또 고등학교 신입생을 뽑을 때 학교마다 선발 시험을 볼 것인지, 시험 없이 추첨 배정(평준화)할 것인지도 교육감이 결정한다. 내신 같은 갖가지 시험 형태도 교육감 손에 달렸다. 학교 급식도 교육감이 계획을 세워 실시하게 돼 있다.

올해 선거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민들이 직접 뽑는 교육 의원은 교육감이 가진 권한을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교육 의원은 시.도 교육 위원회, 시.도.광역의회에서 교육 관련 상임 위원회가 하나로 합쳐진 '교육 위원회'를 구성한다. 이 위원회는 의회에 제출하는 조례안, 예산.결산안, 특별 부과금.사용료.수수료.분담금.가입금 부과와 징수에 대한 사항, 대통령령이 정하는 중요 재산 취득.처분에 대한 것들을 심의, 의결할 수 있다. 또 교육감과 하부 교육 행정 기관, 또 다른 교육 기관에 대한 행정 사무 감사와 조사를 할 수 있는데 이때 교육감이나 관계 공무원을 출석시키거나 답변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이처럼 교육 자치에서 중요한 일을 심의하는 교육 의원이 제 노릇을 하는 것은 교육 자치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를 판가름한다.

참여하면, 바뀐다!

교육감과 교육 의원을 주민 직접 선거로 뽑는 것은 주민이 원하는 교육 자치를 이뤄 내기 위해서다. 그런데 유권자인 학부모들은 정작 교육감이나 교육 의원 선거에 관심이 적다. 학부모들부터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숨 쉬며,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학교를 바꿀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친환경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독서, 학습 준비물 무상제공을 실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갈 수 있다. 시험 제도와 평가 체계를 바꾸고, 5월과 10월에 중간 방학을 만들고, 야간 자율 학습과 심야 학습을 없앨 수 있으려면 우리 동네 교육 의원, 교육감을 제대로 뽑아야 한다.

참여하면 바뀐다! 아주 쉽다.

박종호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친다. 먹머루빛 눈동자가 빛나는 아이들과 함께 살아 있는 우리말 수업을 꿈꾸며 이십 년 넘게 교실 안팎을 넘나들고 있다.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에서 배운 삶을 가꾸는 글쓰기와 책 읽고 토론하기에 관심이 많다. <국어교과서 작품 읽기-중1 수필>, <문학 시간에 소설 읽기> 같은 책을 함께 쓰고 엮었다.


<개똥이네 집>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보리

보리 2010-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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