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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사람'이란 말을 들으면 요즘 젊은이들은 대뜸 엄홍길 같은 등산가를 떠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70~80대 어르신들한테 떠오르는 '산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빨치산'이 떠오르기 십상일 겁니다. '산 사람'은 산에 자주 오르는 사람이나 산에 사는 사람이겠는데, 요즈음은 흔히 건강을 지키려고 산에 오릅니다. 등산 모임도 갖가지지요. '역사와 산'같은 모임처럼 나라를 지키거나 되살리려고, 조국 분단을 막으려고, 외세에 저항하려고 산에 올랐던 사람들 발자취를 따라 산에 묻힌 역사를 캐내려는 뜻에서 이 산 저 산 뒤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말이나 휴일에 답답한 도시 환경을 벗어나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스트레스를 풀거나 친목을 꾀하려고 산에 오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옛말 '산 사람'들 이야기를 많이 들은 일흔 가까운 할배가 하는 넋두리일지도 모릅니다. 제주도에 있는 오름은 요즈음에는 거의가 민둥산이지만 옛날에는 아니었답니다. 제주 4.3 항쟁이 일어나고 나서 통일 정부를 요구했던 많은 제주도민들이 '좌익 빨갱이'로 몰려 뭍에서 올라온 군경들 총알받이가 된 적이 있다더군요. 다만 아비가, 자식이 '통일조국'을 외쳤다 하여 젖먹이까지 포함해서 식구들을 모두 쏘아 죽이고도 모자라 살던 집까지 불태워 버린 아픈 기억으로 아직도 제주도민들은 가슴이 멍둘어 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어찌 그뿐인가요. '산 사람' (빨치산)이 몸을 숨길 곳이 없게, 산골짜기에 있는 집들을 모두 불태우고, 한라산 나무들까지 깡그리 태워 버려 새들도 둥지를 틀 수 없고, 노루도 발 둘 곳 없는 민둥산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해요. (설마 하는 분은 <동백꽃 지다> (강요배, 김종민, 보리, 2008)를 꼭 한번 들춰 보시기를 권합니다.)

제주도에서만 일어났던 일이 아니지요. 거의 비슷한 일이 설악산, 지리산, 그 밖에 크고 작은 온갖 산에서 벌어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산을 '산 사람'이 숨을 곳이라 하여 매몰차게 불태우고 아름드리 나무들을 죄다 베어 넘기는 바람에 50년 전에는 이 땅에 있는 거의 모든 산이 벌거숭이가 되다시피 했다더군요. 숲이 없으면 사람 숨을 곳만 없어지는 게 아니라 숲에 기대서 살던 많은 생명체들이 살아갈 보금자리도 없어집니다. 이 땅에서 호랑이도, 여우도, 늑대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그때 그 사람들이 벌인 그 몹쓸 짓 때문이었다고 지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숲이 사라지면 산에 오르고 싶은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자연이 오랜 세월에 걸쳐 그나마 되돌려 놓은 우리 산을 다시는 민둥산으로 만드는 일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요즈음 산에 오르는 분들은 산에 오르기 전에 산에 얽힌 이 아픈 역사 앞에 두 손 모으고 경건한 마음으로 오르면 좋겠어요.)

'사대강 정비 사업'이 한창입니다. 이 일을 밀어붙이는 분들 가운데 그 강에 몸 붙이고 사는 온갖 생명체들, 특히 오랫동안 우리 식량 자원이었던 민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할까 걱정하는 분이 몇이나 될까요? 자연을 망치는 일은 나라를 망치는 일입니다. 우리나라같이 자연 자원, 생명 자원밖에 가진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윤구병


보리에서 펴내는 월간 부모님 책 <개똥이네 집> 5월호에 실린 '고무신 할배의 넋두리'


보리

보리 2010-05-04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고 출판의 빈 고리를 메우자. 수익이 나면 다시 책과 교육에 되돌리자. 보리출판사의 출판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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