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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날들을 매캐한 최루연기들이 뒤덮은 하얀 밤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1991년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상하게도 그해 봄날은 따스한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무척 뜨거웠던 걸로 기억합니다. 대학 신입생으로서 낭만과 자유로운 세상을 느끼기도 전에 강경대라는 한 친구의 죽음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잔잔한 내 머리 속에 던져진 돌멩이 같은 것이었지요. 그 뒤로 믿기지 않을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고,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거리를 뛰어다녔습니다. 백골단의 몽둥이에 맞고, 군홧발에 밟히며 말입니다. 나는 지금껏 그 나날들을 매캐한 최루연기들이 뒤덮은 하얀 밤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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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출처 : 강경대열사 추모사업회>

1991년 4월26일 당시 명지대학교 재학생이던 강경대씨가 경찰진압과정에서
경찰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머리를 맞고 숨지자
이를 규탄하며 연세대학교 정문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학생들
<글 출처 : 1991 년 연세대, 2005년 광화문 - 오마이뉴스>

그리고 세상을 보는 눈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책 속에서만 보아왔던 사회 억압과 구조, 독재 권력과 항쟁, 열사, 이런 단어들이 어느덧 마음 한구석을 채워가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그것은 내가 일직이 동경하고 기대했던 포근한 대학생활과는 거리가 먼, 현실에 대한 뜨거움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는 만큼 왠지 모를 두려움도 커졌습니다.

대학시절 내내 쫓아다녔던 통일집회와 여러 시국대회에서 선생님과 나는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 20년의 시간이 흘렀고, 만화가가 되었습니다. 하루는 보리출판사 윤구병 선생님께서 연락을 하셨습니다. 만화로 옮기면 좋을 이야기가 있다고 하시며 책을 하나 건네셨습니다.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라는 어느 비전향 장기수 선생님의 수기였습니다. 자신이 걸어간 길을 담담히 그려낸 그 책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리고 알 수 없었던 반세기 역사의 낯선 숨결이었습니다. 몇 달이 지나 허영철 선생님을 찾아뵙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1991년 2월 25일, 선생님은 '국가보안법위반 및 간첩미수'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무려 36년을 감옥에서 살고 나왔습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갔던 같은 해 봄날에 말입니다.


말이 36년이지, 내가 살아온 시간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대학에 들어가서 해방감을 느낄 때, 다른 누군가는 세상에 나오며 해방감을 느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 의미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 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대학시절 내내 쫓아다녔던 통일집회와 여러 시국대회에서 선생님과 나는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전혀 몰랐지만요. 이십 년이 지난 뒤에 새롭게 발견한 시간과 공간은 묘한 흥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기억의 조각을 맞추고 과거에서 데리고 오는 것. 그리하여, 잊혀진 기억에서 낯선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일찍이 흉악한 빨갱이라고 들어왔던 사람의 모습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정말 순수하였습니다.

작업은 더디게 진행되었고 때로는 여러 일들 때문에 중단되기도 하였습니다. 작업하는 동안 선생님은 가끔 서울에 오시면 연락을 하시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인천에 사시는 장기수 동지 박정편 선생님과 함께 불편한 몸을 마다 않고 부천까지 오셔서 지나간 이야기들을 더듬으며 책의 내용들을 상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오래된 기억들도 마치 앨범을 넘기듯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십 년 전 일도 희미한데, 사람 이름이나 지명까지도 정확히 기억해 내셨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선생님은 항상 사람을 먼저 떠올리고 그 뒤에 상황을 정리하셨습니다. 기억의 힘은 바로 사람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또한 간간히 웃음을 주체할 수 없었던 그 표정은 우리가 일찍이 흉악한 빨갱이라고 들어왔던 사람의 모습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정말 순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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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어린 시절부터 젊을 때까지 찍은 사진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신상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해 가족들이 전부 없애버렸기 때문이었지요. 결국 눈에 보이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럼 무엇이 남아 있었던 것일까요? 다시 한 번 사람의 기억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오로지 사람의 기억만이 남아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기억 속에서 이야기가 하나하나 공중으로 흩어지면, 나는 그 흩어진 눈에 보이지 않는 조각들을 담아 눈에 보이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일은 매우 의미 있고 흥미로운 작업이었습니다. 사람의 기억이란 무릇 과거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현재에서도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해석이 되어야만 새로운 생명을 얻으르 수 있다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얻은 기억은 역사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무엇이 두려워서일까요? 우리 역사는 권력자의 시각에서만 쓰여지고 더러는 많은 것이 생략되어 민중의 시각이 사라지고 가려진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만화 <>을 그릴 때는 '내가 알고 있는 역사의 단상은 지극히 추상적이며 손에 잡히지 않는 무엇'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직접 겪어보지 못한 시대를 이해하기 쉽지 않았고, 역사를 책으로만 접하게 된 한계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번 작업은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하지 못했던 비전향장기수의 이야기에 살을 정교하게 붙이는 작업이 자연스럽게 이뤄졌습니다. 책으로만 보아왔던 역사가 한 사람의 삶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났습니다. 더불어 한 사람이 걸어온 삶과 우리 역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서로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습니다.



예전부터 우리의 근현대사는 송두리째 사라진, 흡사 구덩이와도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무엇이 두려워서일까요? 우리 역사는 권력자의 시각에서만 쓰여지고 더러는 많은 것이 생략되어 민중의 시각이 사라지고 가려진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사라진 역사의 중심에서 선생님이 겪었던 이야기들은 권력자의 시각도 지식인의 시각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깨우치는 노동자의 이야기, 일하는 혁명가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때는 다들 그렇게 살았다"고 말씀하시는 평범함 속에는 민중의 시각으로 다시 쓰여진 우리의 역사가 보였습니다.

이 만화 역시 불편한 글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기에 보는 이들에게 불편함을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서문에서 윤구병 선생님이 '좋은 글이란 불편한 글'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이 납니다. 이 만화 역시 불편한 글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기에 보는 이들에게 불편함을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분단 이후 수십 년 동안 반공이 국가 이념이었던 대한민국 평균 국민이면 말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과 정반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겠지요. 저 역시 잠시라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이야기들을 보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이겠지요. 그러던 중에 이것은 무엇이 옳고 그르냐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생각이 다른 문제라고 판단했습니다.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세상을 다양하게 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우리와 다르게 살아온 한 사람을 그 사람이 살아온 삶 그 자체로 인정하고 역사의 기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이 땅이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고 서로 다른 생각들이 공존하며 자유롭게 사는 민주주의 사회라면 말이지요.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허영철 선생님께서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책을 선생님 두 손에 온전히 전할 수 있기를 바라며, 질곡 많은 삶을 이겨 오신만큼 부디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니, 그런 거창한 것보다는 그냥 그것이 내 삶이다 생각하며 열심히 살았을 뿐이에요.
허영철 선생님


역사는 우리 기억에서 새롭게 태어나 생명을 얻는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은 또 하나의 희망의 역사를 낳을 것입니다.

2010년 풀이 돋아나는 날에 박건웅




보리

보리 2010-04-30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고 출판의 빈 고리를 메우자. 수익이 나면 다시 책과 교육에 되돌리자. 보리출판사의 출판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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