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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춤에 나오는 사람들은 거의가 소박한 우리 이웃들이에요.
머슴, 백정, 파계승, 문둥이, 사당패, 기생. 모두 어딘가 부족하거나 남들과 달라서 무시당하는, 가슴속에 눈물이 많은 사람들이죠. 하지만 탈춤 속에서만큼은 억눌렸던 이야기를 마음껏 풀어 놓고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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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람들은 탈이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어 항상 두려워하고 신성하게 여겼어요. 그래서 마을을 지켜 주는 신으로 사당에 모시거나 풍년을 비는 굿을 할 때, 나쁜 귀신을 쫓는 나례 의식이나 장례식을 할 때도 탈을 썼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쓰임새가 차츰 바뀌었고, 오늘날에는 탈춤에 쓰는 놀이탈로서만 살아남아 쓰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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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이란 말은 무슨 뜻일까?

이 '탈'이라는 말에는 복잡하면서도 재미있는 여러 가지 뜻이 담겨 있어. 탈은 먼저 얼굴을 가리거나 꾸미려고 쓰는 물건을 뜻해. 또 얼굴뿐만 아니라 머리에 쓰는 것, 온몸을 가리는 것 따위도 넓게 보면 다 탈이라고 할 수 있지.

이런 탈은 언뜻 생각하면 진짜 모습을 가리고 거짓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니까 나쁜 것 같기도 해. 한자어인 '가면'은 가짜 얼굴이란 뜻이고, 가면을 쓴다는 건 결국 겉과 속이 다르다는 거잖아. 또 '탈'이라는 말은 안 좋은 뜻으로 쓰기도 해. '탈이 생긴다', '탈 난다' 는 말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 곧 나쁜 일이 생긴다는 뜻이고, 갑자기 일어난 사고, 병, 실수, 허물이나 트집을 가리킬 때도 탈이란 말을 쓰니까 말이야. "아는 게 탈이다", "배탈이 타다", "생사람한테 괜히 탈을 잡는다",  ······. 다 한 번쯤은 들어 본 얘기들이지?

그럼 그렇게 나쁜 뜻만 지닌 탈이니까, 그런 탈을 쓰고 추는 탈춤도 하나 좋을 게 없겠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단다. 앞서 나온 탈의 여러 가지 뜻을 하나로 모아 보면 탈춤이란 '탈을 쓰고, 탈 난 것을, 탈 잡아 노는 것'이란 말인 셈인데, 그럼 이게 무슨 뜻일까? 탈을 쓴 채로 잘못된 것이나 좋지 않은 것들을 시우너하게 꼬집으면서 응어리를 푸는 것. 어라? 그러고 보니 좋은 뜻이 되었네!
<탈춤>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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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전통도감 다섯번째 책 <탈춤>
토박이 기획 | 조현 글 | 홍영우 그림


탈출 그림을 그리신 홍영우 할아버지











지금 우리 시대에 우리 겨레의 정서를 이렇듯 자연스럽고 능청맞을 만큼 오롯이 그림으로 드러낼 수 있는 분은 홍영우 선생님 말고 찾을 수가 없다고 윤구병 선생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홍영우 선생님은 우리 곁에서 오래 사신 분이 아니라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일 조선인'이고 그곳에서 줄곧 살아오신 분이라는 거에요. 우리말도 스물 네살 되던 해에 처음 배우셨어요.


이 할아버지는 옛날부터 전해 오는 우리 탈을 무지 좋아해요.
탈은 우리 겨레의 얼이 담뿍 담겨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익살스럽고 따뜻한 맛이 나는 그 생김새가 마음에 썩 들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아시아에만 해도 500개가 훨씬 넘는 탈이 있다지만, 우리나라 탈처럼 구수한 익살과 따뜻한 정을 담고 있는 탈은 찾아보기 힘들거에요.

말뚝이나 취발이, 문둥이, 미얄할미를 비롯한 노장, 옴중, 먹중, 그리고 언제나 서민을 등쳐 먹고 권세 부리기를 일삼는 얄미운 양반에 이르기까지 우리 탈춤에 나오는 탈들은 한결같이 익살스러우면서도 사람다운 맛이 납니다. 그 가운데에는 한쪽 눈은 쑥 올라갔는데 반대쪽은 거꾸로 내려앉은 탈이 있는가 하면, 눈뿐만 아니라 코와 입까지 다 제각기 비뚤어 우스꽝스러운 탈도 적지 않아요. 얼굴이 온통 털로 뒤덮인 탈도 있고 곰보 자국으로 울퉁불퉁 일그러지거나 주근깨와 검버섯이 가득한 탈도 있어요. 심지어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인 영노나 사자도 무섭기는커녕 어딘가 어수룩해서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올 만큼 재미나게 생겼거든요.

우리 탈들이 이렇게 따뜻하고 익살스러운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아마도 그건 우리 탈이 오랜 세월 동안 서민들과 함께 살아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물론 옛날에는 탈춤이 양반들의 비위를 맞추고 그들을 즐겁게 해 주려고 벌이는 놀이였던 때도 있었지요.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탈춤을 양반들 곁을 떠나와 서민들 속에서 살게 되었지요. 서민들이 탈춤을 통해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서로 어울리면서 탈춤은 더욱 풍성해지고, 마침내 탈 생김새까지 착하고 소박한 서민의 얼굴을 그대로 닮게 된 거라 생각되어요. 탈에 담긴 익살스럽고 따뜻한 느낌은 곧 우리 서민의 모습 그대로인 셈이지요.

우리 탈과 일본의 전통 가면극인 '노가쿠'에 쓰는 탈을 견주어 보면 이 사실은 더욱 뚜렷해져요. 노가쿠에 쓰는 탈은 아주 엄숙하고 차가운 느낌을 주거든요. 그것을 이 가면극이 주로 일본의 귀족 지배층이 보고 즐기는 가면극으로 발전해 와서 지배층들의 삶과 생각이 탈에 그대로 녹아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 탈과 일본 탈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물론 일본 탈 가운데서도 '횻도코'처럼 익살스러운 것이 있기는 해요. 하지만 우리 탈에 비하면 몇 개 되지 않아요.

이 할아버지는 우리가 익살스럽고 따뜻한 탈을 문화유산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겨레의 자랑으로 여기고 있어요. 나이 70이 넘도록 남의 땅 일본에서 살아오면서 민족의 얼을 긍지로 간직하지 않고서는 온갖 민족적 차별을 이겨 낼 수 없다는 것을 몸으로 사무치게 느껴 보았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이처럼 귀중한 민족의 문화유산을 소중히 간직할 뿐만 아니라 잘 가꾸어 다음 세대한테 고스란히 넘겨주어야 해요. 그 뜻있는 일에 이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그림을 그렸답니다

어떤 탈춤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

서낭굿탈놀이 | 하회별신굿탈놀이
농촌마을에서 액이나 잡귀를 막고 농사가 잘되기를 서낭신한테 빌면서 함께 놀았던 탈춤이다. 해마다 지내는 동제와 몇 년에 한 번씩 지내는 별신굿이 있다.

오광대 | 가산오광대 통영오광대 고성오광대
경상남도 가산 고성 통영 지방 들에서 놀던 탈춤이다. 흔히 다섯 광대가 나오거나 다섯 마당으로 이루어진다. 강에 떠내려온 궤 안에 탈 다섯 개와 탈놀이 도구가 들어 있어 놀이가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들놀음 | 수영야류 동래야류
낙동강 동쪽 지역인 부산 지방 사람들이 정월 대보름에 세시 놀이로 즐기던 탈춤이다. 길놀이 춤놀이 탈놀이 뒤풀이로 이어지는 마을 축제의 한 부분으로 여러 대에 걸쳐 토박이들이 놀이를 이끌어 왔다.

산대놀이 | 양주별산대놀이 송파산대놀이
서울과 경기도 지방에서 놀던 탈춤이다. 본디 서울의 애오개 녹번 구파발에서 놀던 것을 본산대놀이라 하고 그것을 본떠 다른 곳에서 만들어 놀던 것을 별산대놀이라고 한다. 지금은 양주와 송파의 산대놀이만 전한다.

해서탈춤 | 봉산탈춤 강령탈춤
강령 봉산 해주 같은 황해도 지방의 여러 고을에서 단옷날 놀던 탈춤이다. 큰 장이 서는 곳에서 구경꾼을 모아 놓고 했는데 나쁜 기운을 쫓거나 복을 빌기보다는 다 함께 즐기는 놀이로서 내려온다.

사자놀이 | 북청사자놀음
함경남도 북청 지방에서 정월 대보름마다 놀던 탈춤이다. 우리나라에 살지 않는 사자를 내세운 것이 색다르다. 동물의 왕인 사자가 한바탕 춤을 추면 나쁜 귀신과 재앙을 쫓고 마을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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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탈춤 2과장 팔목중춤 | 목중 여덟이 차례로 나와 한 명씩 춤 자랑을 한다. 여덟째 목중이 춤을 끝내면 다른 목중들을 다시 불러들여 함께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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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별산대놀이 6과장 노장놀이 | 소무 둘이 노장을 유혹하니 노장은 소무의 아름다움에 빠져 파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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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야류 4과장 할미 영감춤 | 지팡이를 짚은 할미가 춤을 추면서 나와 영감을 찾아다닌다. 영감은 첩과 놀고 있다가 아들 셋이 다 죽은 걸 알고 홧김에 할미를 때린다. 할미가 쓰러지자 영감은 봉사를 불러 경을 읽히고 무당을 불러 굿을 하지만, 할미는 숨을 거두고 만다.


땅과 겨레를 닮은 탈

땅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는 생명들은 그 땅을 닮는대요.
우리 겨레뿐 아니라 우리 겨레와 함께 살아온 동물들도 이 땅을 닮아 호랑이도 사납지 않았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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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이야기> 2009, 보리

깍아 놓고 보면 어쩐지 마을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닮았던 장승처럼,
우리 탈도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닮았어요. 그래서 탈춤 이야기는 오래된 문화재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이고 우리네 이야기에요.

꺽쇠가 양반의 허리끈을 잡고 이끌며 갈지자걸음으로 걸어 나오네.
"이놈, 꺽쇠야, 양반을 정하게 모시려무나. 어째서 삐뚝삐뚝 갈지자 걸음을 하는고?"
양반이 거드름을 피우며 나무라면 꺽쇠는
"이렇게 모시면 되겠슴메?"
하며 양반 등을 슬쩍 밀쳐 넘어뜨리질 않나, 양반 수염을 함부로 만지면서
"실로 좋슴메, 주인 양반, 내하고 바꿈세."
하며 자기 수염하고 바꾸자고 하질 않나 버릇없이 굴어.
"이놈, 철딱서니 없는 말 좀 작작해라."
"이놈 저놈 하지 맙세, 사람 팔자 알 수 있슴메? 주인 양반이라고 꺽쇠 신세 되지 말란 법 있슴메?"

<탈춤> 222쪽
'사자놀이' 2과장 꺽쇠 양반



보리

보리 2010-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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