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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병 선생님" 갈래 글75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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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건성으로 듣고, 듣자마자 잊어버린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세상에는 한 귀를 꼭 막고 들어야 할 말이 있습니다. 잊어버리지 않고 마음에 새겨 두기 위해서요.

귀담아듣지 않으면 이 소리 저 소리 가려들을 수 없고, 소리의 질서를 알지 못하면 벙어리가 되기 십상이지요. 그래서 옛날부터 '듣는다'는 말을 그렇게 귀하게 여겼습니다. 저는 불교 경전에 밝지 못하지만 금강경에서 가장 큰 울림을 지닌 말이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는 한자로 된 네 마디라고 봅니다. 우리말로 풀면 '나는 이렇게 들었다.'는 뜻이지요.
자연이 들려주는 말이든 사람 입을 빌어 옮기는 말이든, 남이 하는 말을 잘 헤아려 듣는 사람은 슬기로워지고, 자기 말만 앞세우고 남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어지기 마련입니다. 속담 하나 더 들까요? '좋은 약은 입에 쓰고, 바른 말은 귀에 거슬린다.' '예수님 말씀', '부처님 말씀'을 앞세워 손발과 몸을 놀려 일하지 않고 입으로만 말품 팔아먹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말이 홍수가 되어 세상이 떠내려갈 만큼 시끄러운데, 귀 기울여 보면 욕지기나는 말이 백에 아픈아홉인 듯싶습니다. 절집에서 흘러 다니는 말 가운데 '살불살조' (殺佛殺祖)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처든 큰스님이든 눈에 띄는 대로 잡아 죽이라는 말이겠는데, 표현이 거칠기는 하지만 귀담아들음 직한 말입니다. 예수나 부처나 공자, 맹자 같은 사람이 어쩌다 한 사람 나타나면 그 사람 팔아서 땀 흘리지 않고 매끄러운 입만 놀리면서 사는 사기꾼들 수십, 수백만이 비 온 뒤 죽순 솟듯이 나타나니, 이른바 '인류의 스승'이나 '구세주'가 탄생하는 게 어찌 반가운 일일 수만 있겠습니까?

지금 정권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하는 짓을 보자니 입만 열면 서민들을 위한다면서도 죄지은 재벌 총수 하나만 딱 골라서 풀어 주기, 농사짓는 땅이 물에 잠기고 오염 물질이 검은 띠를 이루는데도 곱게 흐르는 물 파헤치고 토막 치기, 청정한 유기농산물 기르는 밭을 뭉개 관광도로 만들기, 교육개혁 한다고 아이들 손발 묶어 제 앞가림도 못하는 병신 만들고 그러다 대학 나와도 오갈 데 없는 백수 만들기, 살아 보겠다고 발버둥치는 가난한 사람들 집 헐고 가게 때려 부수고, 거기에 맞선다고 멀쩡한 사람 테러리스트로 몰아 불태워 죽이기를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저지르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 이곳저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려서는 안 됩니다. 제발 귀 열고 우리 말 좀 들으라고 애걸만 해서도 안 됩니다. 이런 말이 망령 난 노인네가 한쪽 편만 들어 섣불리 지껄이는 헛소리로 들린다면 <내가 살던 용산>이나 <파란집>,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 같은 책을 직접 보세요.

불편하다고 해서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다음 차례는 우리일지도 모르니까요.


윤구병


보리에서 펴내는 월간 부모님 책 <개똥이네 집> 2010년 4월호에 실린 '고무신 할배의 넋두리'





보리

보리 2010-03-26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고 출판의 빈 고리를 메우자. 수익이 나면 다시 책과 교육에 되돌리자. 보리출판사의 출판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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