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달이 펴내는 어린이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 자매지인 부모와 어른을 위한 책 <개똥이네 집> 8월호 (통권 117호)‘개똥이네 세상보기’ 에 실린 이시다 노부미 선생님의 글을 블로그로 옮깁니다. (편집자 주)
그림책 《끝나지 않은 겨울》을 일본에서 출판하기까지 - 그것은 의문과 의분
글 이시다 노부미 | 번역 강제숙
태평양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되는 올해, 제 나라인 일본은 지금 어리석은 정권에 의해 전후 일본을 쌓아 올린 기본적 규범인 일본 헌법의 평화조항을 짓밟고 ‘죽고 죽이는 전쟁하는 국가’, 다시 말해 ‘보통의 국가’로 변질되려고 합니다.
국민의 어떠한 동의도 없이 행해진 ‘각의 결의’에 의해 법안화한 ‘전쟁법안’을 이번 여름 국회에서 강행, 통과시키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매우 위급한 분기점을 맞닥뜨린 것입니다.
전후 최악의 정권이라 해도 마땅한 아베·아소 반동정권은 양심적인 보수 세력조차 그 위험성에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이 정권이 뼛속부터 ‘역사수정주의자’ 들의 집합체라는 사실은 한·일, 중·일의 정상회담이 열리지 못하는 것으로도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벌어져 온 지난 10년 사이에 한국에서는 2010년 8월 15일, ‘한국병합 100년’이 되는 해에 강제숙 님이 글을 쓰고 이담 님이 그림을 그린 그림책 《끝나지 않은 겨울》이 출간되었습니다. 저는 이 책이 머지않아 일본에도 번역되어 나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한국병합 100년’을 즈음하여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어리석은 잘못을 사실에 바탕을 두고 정확히 청산·극복할 것을 바라고 있었고, 《끝나지 않은 겨울》이 그에 도움이 되는 책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뒤로 한·일 피폭자와 그 2세, 3세 문제와 관련하여 강제숙 님과 왕래가 있었지만, 이 그림책이 일본에서 나온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저는 ‘할 수 없이’ 한·일 근현대사에 양심적인 이해가 있는 교토와 도쿄의 출판사 몇 군데를 방문했지만 승낙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림책 《끝나지 않은 겨울》을 일본에 소개하게 된 것은 일본에서 1년에 네 번 발행되고 있는 잡지 <계론21> 제10호(2010년 10월)에 강제숙 님의 인터뷰 기사를 실어 달라고 요구한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기사는 같은 해 8월 초순, 히로시마에서 취재한 것입니다만, 독자였던 제가 편집장에게 의뢰해 실린 것입니다. 이 기사 ‘아는 것부터, 시작한다’의 주제는 한국, 조선의 피폭자와 그 2세, 3세 문제였습니다. 그 기사에서 강제숙 님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이야기하며 그림책 《끝나지 않은 겨울》이 그해 8월 15일에 한국에서 나왔고, 언젠가는 일본에서도 번역되어 나올 거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 일본에서 이 그림책은 여러 사정으로 출간이 어려웠습니다. 출판사마다 나름 사정이 있었겠지만, 만일 ‘안 팔릴 책’이기 때문이라는 까닭이었다 해도, 저는 그것이 두 나라 사이에 예민한 ‘위안부’ 문제를 다룬, 그것도 한국 출판물인 것이 문제였던 게 아닌가 하는 강한 의문을 느꼈습니다.
다시 말해 지난 10년 동안 일본과 아시아·태평양전쟁에 관련된 여러 나라들과의 철저하지 않은 전후 처리, 정리되지 못한 과거 극복 문제가 배경에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습니다. 출판사마다 가진 개별 사정이 아닌 다른 배경이 뿌리 깊이 있는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역사수정주의자’ 들의 난폭한 행위로 평화 헌법을 버리기에 이르는 일본이라는 국가가, 실제로도 전쟁이 끝난 뒤 70년이 지나도록 관련된 여러 나라와 진심 어린 관계를 이루지 못한 것을 저는 새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오해가 없도록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특별히 ‘위안부’ 문제를 이해, 추구, 해명을 하고 있는 사람도 아니고, 이 운동에 직접 몸담고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다만 ‘나눔의 집’을 방문해 할머니들의 자상함을 느끼고, 떨리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체험을 했을 뿐입니다.
또한 일본을 방문한 할머니들이 일본 가곡 ‘고향’의 노랫말 ‘토끼 쫓고, 저 산-’을 흥얼거릴 때마다 ‘이제 그 노래는 부르지 않아도 됩니다. 아리랑만을 불러 주세요!’라고 마음 깊은 곳에서 외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운동에 몸담은 적이 없는 제가 일본에서 이 그림책이 반드시 나오게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앞서 나온 의문에서 비롯하고, 이 의문이 지금의 아베·아소 정권에 대한 분노로 돌아섰고, 의분으로서 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에 태어난 저의 이 의문과 의분은 피해를 당했던 할머니들의 한에 견주면 비교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저 곱씹고 곱씹어 생각하다 보니 《끝나지 않은 겨울》 일본어판 출간이라는 결론에 이른 것입니다.
이번에 일본에서 《끝나지 않은 겨울》을 출간하는 것은 사실상 ‘자비출판’입니다만, 출자하신 몇 분이 동의해 주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번역한 《소녀 이야기》를 펴낸 ‘일본기관지출판센터’를 만났기에 가능했습니다. 무엇보다 강제숙 님의 끝없는 평화활동 노력의 결과이고, 화가 이담 님과 김근희 님 부부도 버팀목이 되어 주었습니다. 또 자연과 사람 사이 어우러짐을 위해 애쓰는 보리출판사 여러분의 노력 덕분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깊은 고마움을 느낍니다.
우리 일본이 역사와 사실에 바탕을 두고 국가로서 ‘한 점 부끄럼 없이’ 사죄하고, 배상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한 국민으로서 이 그림책이 일본에서 나오는 것으로 작게나마 하나의 ‘과거 청산’, ‘과거 극복’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작은 안도감이 듭니다.
그러나 ‘과거 청산’, ‘과거 극복’을 둘러싼 일본의 정치, 사회 정세는 심상치 않은 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전쟁 전 일본 제국주의, 군국주의의 중추부 출신과 그 후예인 아베·아소 정권은 ‘전쟁법안’을 강행하려는 꿍꿍이와 미국의 종속 아래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다시 재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책이 그들의 움직임을 허락하지 않고 어리석은 꿈을 깨는 것으로 이어져 한 권, 한 권이 널리 보급되어 하나의 밀알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이번 여름부터 이 책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애쓰겠다고 굳게 마음먹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피해를 입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한을 풀기 위해!
그림책 《끝나지 않은 겨울》 출판 일본모임 대표
이시다 노부미(石田信己) 드림
* 원고가 쓰인 뒤인 지난 7월 16일, 집단자위권 허용을 골자로 한 11개 안보 관련 법안이 일본 중의원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되었다.
이시다 노부미(石田信己) 일본 교토에서 34년간 노사(勞使)문제 관련 중소기업운동을 했다. 퇴직한 뒤 ‘교토 피폭 2세·3세의 모임’ 운영위원으로 원폭피해자들을 지원하는 활동과 그림책 《끝나지 않은 겨울》 출판 일본모임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끝나지 않은 겨울》 일본어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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