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많은 책을 읽힐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은 교사들에게는 쓸데없는 관심을 버리라고 일러주고 싶다. '양보다 질'이라는 뜻에서만이 아니라 많은 독서 시간은 그에 비례하여 감각 체험 시간을 그만큼 많이 빼앗아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 한 권의 책을 읽고도 삶의 방향을 바꾼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몇 해 전에 아이들의 '논리적 사고' 능력을 높인다는 구실로 아직 '형식적 조작' 능력도 생기기 전인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논리야...> 시리즈 같은 책들이 마구잡이로 권장될 때 나는 그 해독을 지적하고 논리에 연관된 책 백 권을 강제로 아이들에게 읽히는 것보다 《몽실언니》같은 책 한 권을 읽히는 것이 아이들의 사고를 깊고 폭넓게 만드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독서교육에는 교사들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간접 체험으로 직접 체험을 대신하려는 '그림자 삶'의 태도를 아이들에게 심어주지 않기 위해서도 중요하고, 주인으로 커야 할 아이들을 누군가, 무엇인가의 종으로 길들이지 않아야 한다는 뜻에서도 중요하다. 그래서 글의 유용성과 해독을 먼저 안 나라들에서는 독서교육에 관심을 갖는 교사들이 꾸리는 단체나 공식 단체들도 많고, 독서교육에 대한 자료 교환도 활발하다.
우리 나라는 읽은 책의 권수로, 또 비치된 장서의 양으로 독서 수준을 가늠하려는 무분별한 경향이 없지 않은데, 다시 한 번 되풀이하거니와 한 권의 책을 읽혀도 좋으니 제대로 된 책을 읽혀야 한다. 제대로 된 책이라는 말이 잘 잡히지 않을 수도 있는데, 다시 말하자면 한 권의 책을 읽히더라도 주인이 쓴 글을 읽혀야 하고 손님이나 종이 쓴 글을 읽히지 말아야 한다.
꾸며 쓴 글은 대체로 죽은 글이고 고작해야 손님이나 종의 처지에서 쓴 글이라고 보아도 틀림없다. 글을 꾸미는 것은 남에게, 주인에게 잘 보이려고 그런다. 한때는 글쓰는 사람들이 권력자들 밑에서 종살이를 하고, 요즈음에는 돈에 팔려 읽는 사람의 비위에 맞추며 본심을 숨기고 그럴 듯하게 꾸미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하도 교묘하게 꾸며서 꾸몄는지도 모르게 꾸미는 재주를 가진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아이들 가운데도 백일장 같은 데서 꾸민 글을 써서 상 받는 맛을 들인 아이들이 있는데, 그래도 아이들 글은 꾸며낸 죽은 글인지 본심이 드러난 살아 있는 글인지 쓴 말투를 보고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또래 아이들이 쓴 글을 먼저 많이 읽혀야 한다는 말에는 주인이 쓴 글을 읽어야 스스로도 주인 의식이 생긴다는 뜻도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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