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닙니다. 전쟁이 실감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는 아직 전쟁이 끝난 게 아니라고, 휴전상태라고 하는데, 솔직히 저는 전쟁이 다시 일어나는 게 상상이 안됩니다. 물론 이 말을 듣고 펄쩍 뛰며 ‘북한이 어떤 나라인데! 힘을 키우지 않으면 다시 또 전쟁이 일어날 수 있어! 한시라도 긴장을 늦추면 안돼!’ 이런 말을 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그런데 제 생각에는 전쟁 준비를 할수록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손에 들었던 총을 놓고 두 손을 맞잡을수록 전쟁은 멀어지는 거 같아요. 살면서 커다란 전쟁을 두 번이나 겪었고, 전쟁 때문에 힘들게 살아야하는 아이들을 보며 누구보다 슬퍼하셨던 권정생 선생님이 쓴 ‘통일이 언제 되니?’ 를 보면 비슷한 이야기가 나와요.
권정생
우리 나라 한가운데
가시울타리로 갈라놓았어요.
어떻게 하면 통일이 되니?
가시울타리 이쪽 저쪽 총 멘 사람이
총을 놓으면 되지.
그래서 요새는 저도 좀 걱정입니다. 천안함 사건이 일어난 뒤, 갈수록 손을 맞잡기보다 손에 쥔 총을 꽉 움켜쥐는 거 같아서요. 또 요새 쏟아져 나오는 전쟁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를 보더라도 스펙타클하고 화려한 전투 장면 묘사나 ‘국가를 위한 고귀한 희생’을 부각시키는 작품들이 많은 거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가족과 헤어지고, 산과 나무가 불타고, 들판이 탱크바퀴에 짓눌리는 전쟁에서 과연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일까요?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이야기 한 것처럼 ‘승전국에서도 패전국에서도 하층 서민은 굶주렸다’면 전쟁은 가난한 사람들, 힘없고 약한 이들에게는 언제 어디서나 재앙일 뿐입니다.
전쟁을 생각하다 보니 얼마 전에 돌아가신 허영철 선생님이 떠올라요. 선생님께서는 평생을 통일을 위해 애쓰셨어요. 60년 전에 일어난 전쟁을 극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적대관계로 돌아서고 있는 지금 모습을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요. 전쟁을 직접 겪었고 그래서 누구보다도 전쟁의 참혹함을 알기 때문에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힘주어 말하셨습니다.
저는 허영철 선생님이 생각하신대로 더 이상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땅 뿐만 아니라 세상 어느 곳에서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총을 내려놓고 전쟁 준비를 멈춘다면 권정생 선생님께서 바라신 대로 젊은이들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는 대신에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더 많은 것을 아끼며 살아갈 수 있겠죠.
애국자가 없는 세상
권정생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테고
대포도 안 만들테고
탱크도 안 만들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보리 편집부 살림꾼 이용석
<허영철 선생님의 삶을 담은 책>
보리 2010-06-25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고 출판의 빈 고리를 메우자. 수익이 나면 다시 책과 교육에 되돌리자. 보리출판사의 출판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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