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킁킁이가 간다!》는 보리에서 달마다 나오는 어린이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에 2년 동안 연재한 내용을 새롭게 엮어 만든 책입니다. 새롭고, 재미있고, 알찬 정보가 가득한 동물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달마다 한 개체를 정해서 화가, 동물연구가, 편집자가 열심히 공부하고 다양한 자료를 찾아가며 이야기를 꾸몄습니다. 그 결과, 야생에 사는 주인공들이 동물들을 만나 동무가 되는 따뜻하고 정겨운 야생동물 이야기가 만들어 졌습니다. 《킁킁이가 간다!》는 한 마리의 동물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공들여 작업한 시간과 달마다 네 페이지에 걸쳐 보여 주었던 여러 가지 시도가 녹아 있는 책입니다.
<킁킁이가 간다!> 드디어 완간!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게 만들 수 있지?
<개똥이네 놀이터>에 처음 연재를 시작한 건 2007년이었어요. 제가 보리출판사를 알기도 전이었네요. 그때부터 2년 동안 연재를 했고, 단행본 기획을 시작한 것만 해도 벌써 5년 전이에요.
저는 입사하자마자 잡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그때 여러 꼭지를 맡아서 했었는데, 그 가운데 생태 꼭지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뭣도 모르고 이렇게 저렇게 눈앞에 놓인 것을 처리하는 것도 벅차 하며 꼭지를 진행했었어요. 담당했던 여러 꼭지 가운데 가장 어려웠던 꼭지가 바로 생태 꼭지였어요.
생태 꼭지가 어려웠던 까닭은 두 가지였어요. 첫 번째는 아이들 말로 쉽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참고하는 자료들에는 한자 말이 무척 많았기 때문에 그걸 풀어 쓰는 데 한계가 있었어요. 한자말로 쓰면 간단명료하게 전달되는데 풀어 쓰다 보면 설명이 늘어져서 흥미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본디 담았던 뜻과 달라지는 경우도 있어서 정보에 오류가 생기기도 했으니까요.
또 다른 어려움은 ‘재미’였어요. 동물 특성을 알게 되면서 느끼는 ‘앎의 재미’ 말고, 진짜 깔깔대거나 실실거리며 웃게 만드는 재미요. 생태 꼭지는 정보 전달이 목적이잖아요. 그런데 도감에서처럼 그 정보들을 쭉 늘어놓는 방식으로 글을 풀어놓으니 재미가 없을 수밖에요. 동물 그림 하나 떡 놓고, ‘나는 누구야. 어디에 살아. 먹이는 무얼 먹어. 언제 짝짓기를 하고, 언제 새끼를 낳아.’ 이렇게 설명하는 방식이니 아마 보는 아이들도 거의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 거예요.
그때 많이 펼쳐 봤던 꼭지가 ‘킁킁이가 간다!’였어요. 재미있게 표현한 그림 아래에 짧게 정리한 글도 잘 읽혔고, 앞뒤에 만화를 넣어 아이들 흥미를 끄는 것도 좋았어요. 정보량이 적은 것도 아닌데 아이들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만한 구성도 좋아 보였어요. 이 꼭지는 이렇게 읽는 재미도 있고, 정보도 잘 전달했는데 나는 왜 이렇게 못 할까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지요. 그렇게 동경하기만 했던 <킁킁이가 간다!> 3권이 어쩌다 보니 제 손에 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사실 많이 쫄아(?) 있었어요. 잡지에 연재했을 때뿐만 아니라, 단행본 1, 2권을 담당했던 편집자들이 워낙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해 왔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혹시나 내가 이 책에 누가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요. 그런데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 걱정이 겸손이 아니라 그냥 주제 넘는 걱정이었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 책에 그림을 그린 화가 윤보원 선생님이나, 글을 써 주시고 감수를 해 주신 최현명 선생님, 그리고 단행본 초반 기획부터 함께해 온 디자이너 선생님까지 워낙 다들 뛰어나고, 책의 흐름에 대해 저보다 훨씬 잘 알고 계셨거든요. (이젠 흔해 빠진 표현이 되었지만 그래도 덧붙이자면) 그야말로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으면’ 되는 것이었어요.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얹기
그러면 어떻게 숟가락을 얹었는지 살짝 설명할게요. 3권에서는 고라니, 두더지, 멧토끼, 쥐, 고슴도치, 다람쥐, 땃쥐를 만날 수 있어요. 그 가운데 잡지에 연재하지 않은 개체는 멧토끼, 쥐, 고슴도치예요. 새 개체를 작업할 때는 먼저 편집자, 화가, 글 작가가 만나 내용 구성에 대한 회의를 해요. 잡지에 연재할 때부터 그렇게 기틀을 마련해 놓은 거라고 해요. 초반 기획부터 얼마나 많은 구성안이 오고가고, 연구를 많이 했는지 짐작할 수 있지요.
회의 전에 화가 선생님이 거칠게 스케치를 보내 주셔요. 그러면 그걸 가지고 글 작가인 최현명 선생님이 정보를 덧붙여 주시기도 하고, 틀린 정보는 빼기도 하면서 내용을 정리해 나가요. 회의에 처음 참석할 때는 무척 긴장을 했어요. 개체에 대해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 회의를 어떻게 진행해야 하나 걱정을 했거든요. 그런데 웬걸요. 제가 하는 역할은 그냥 열심히 받아 적고, 궁금한 건 물어보고, 그게 다였어요. 회의라기보다는 재미있는 동물 수업 하나를 듣는 시간 같았어요. 한 번 회의를 하면 두세 시간 정도 걸렸는데, 그게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니까요.
책 소개에도 나와 있듯이 최현명 선생님은 십 년 넘게 우리나라뿐 아니라 러시아, 몽골, 인도처럼 여러 나라로 야생동물을 만나러 다니셨어요. 동물 특징에 대해 설명할 때면 “얘가 진짜 웃기는 애입니다.” “얘가 얼마나 대단하냐면요.” “얘가 얼마나 신기하냐면요.” 하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저는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얼마나 재밌던지요. 두더지나 하늘다람쥐, 땃쥐 같은 동물은 사실 실물을 본 적도 없는 동물인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걸 들으면 정말 친근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동물들 생태를 아는 게 더 재밌기도 했고요.
회의를 할 때는 생김새와 행동특징을 보여 주는 정보 면뿐 아니라 앞뒤 만화에 들어가는 내용도 감수를 받았어요. 이를테면 고슴도치가 여름 장마에 새끼들과 둥둥 떠내려 오는 게 시기상 맞는 건지, 시궁쥐가 하수구를 타고 다니며 먹이를 찾는 게 맞는지, 검독수리가 멧토끼를 잡아먹는지처럼 사소한 내용까지 모두 확인을 하는 거지요. 화가 선생님이 그만큼 꼼꼼하셨어요. 아마도 잡지 때부터 단행본 세 권까지 작업을 이어 오면서 내공이 쌓인 것도 있었겠지요.
새 개체 작업은 회의에서부터 시작해 원화 작업을 전부 새롭게 해야 했기 때문에 그것만도 작업 분량이 꽤 많았어요. 게다가 잡지에 연재했던 개체들 가운데 추가로 작업한 분량도 만만치 않았지요. 앞뒤에 들어가는 만화 4쪽은 판형에 맞춰 전체를 다시 그려야 했고, 생김새와 행동특징으로 정보를 나누어 정리하다 보면 정보량이 모자라는 쪽이 생겼지요. 그런 곳에 또 새 정보를 찾아서 넣어야 했습니다. 마감을 하고, 원화를 정리하다 보니, 제가 담당한 이후에 받은 원화만 해도 50장이 넘더라고요. 화가 선생님은 잡지 연재 때부터 단행본 3권까지 거의 킁킁이 작업밖에 못 하고 있는 상황이라 무척 지난하고 고생스러운 시간이었을 거예요. 그래도 끝까지 지치지 않고, 마무리해 주셨으니 존경스러울 따름이에요.
둘레 생명을 살피게 만드는 책
책 하나 마칠 때마다 하나씩 새로운 걸 배우듯이, 이 책을 편집하면서도 많은 걸 배웠어요. 글 작가, 화가와 내용 구성을 짜는 회의부터 정보를 푸는 방법, 표현하는 방법, 넘치는 정보를 덜어내는 방법 같은 편집 과정뿐만 아니라 동물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어요. 앞서 말했듯이 야생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고,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었던 동물들인데, 하나하나 보다 보니 왠지 모를 애정이 생기더라고요. 특히 3권에는 몸집이 작거나 겁이 많은 동물들이 많아요. 그런데 이 동물들이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아 자손을 퍼뜨리려고 얼마나 애를 쓰며 살아가는지, 정말 놀라웠어요.
그 가운데 몇 가지만 소개할게요. 토끼는 풀만 먹고 살아서 처음 눈 똥에는 냄새도 안 난대요. 그래서 자기가 눈 똥을 다시 먹고 영양분을 흡수할 만큼 순하게 살아가는데, 토끼를 노리는 동물들은 너무 많은 거예요. 언제 쫓아올지 모르는 천적들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잔다고 해요. 잘 때 실눈을 뜨고, 두 귀는 다른 방향으로 세우고 자요. 천적이 가까이 오는 걸 알아채고 얼른 도망가려고 그러는 거래요.
젖먹이 짐승 가운데 몸집이 가장 작다는 땃쥐는 어떻고요. 몸집은 작아도 땃쥐한테는 비장의 무기가 있어요. 바로 냄새예요. 몸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서 웬만한 짐승들도 땃쥐는 안 잡아먹는대요. 고슴도치는 위험할 때 가시를 삐죽삐죽 세우고 몸을 오므려서 밤송이처럼 만들어요. 얼마나 단단하게 몸을 오므리고 있는지 천하무적 호랑이라도 고슴도치를 잡아먹지 못 한대요. 그밖에도 고라니가 걸어가면서 똥을 눈다든지, 두더지는 눈이 작아서 앞도 제대로 못 보면서 땅 위에 먹이 지나가는 건 기가 막히게 알아챈다든지, 멧밭쥐는 몸집이 가벼워서 풀 줄기 위에도 잘 올라간다든지 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동물의 생태를 아는 것이 시험 성적을 잘 받고, 성공하는 데는 도움이 안 될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동식물이나 우리 둘레 자연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동식물의 생태를 알고, 동식물이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알게 되면 사람이 지구의 주인이라는 생각은 차마 하지 못할 거예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다른 생명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겠지요. 지구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고, 사람도 그 가운데 하나일 뿐이잖아요. 이 책을 읽는 아이들도 분명 동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고, 나아가 다른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될 거예요. 제가 이 책의 첫 독자로서 그랬던 것처럼요.
삼신할머니가 보살펴 주는 책
2권이 나오고, 제가 3권을 넘겨받은 게 2012년 6월이었는데, 2년이 다 되어서야 3권이 나오게 되었네요.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윤보원 선생님은 멀리 섬진강으로 삶터를 옮기셨고, 둘째도 태어났어요. (킁킁이의 역사 전체를 놓고 보면, 결혼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셨네요.) 디자이너 선생님도 지난해에 아기를 낳았어요. 편집부에서는 임신과 출산을 부르는 책이라는 농담도 있었지요. 삼신할머니가 이렇게까지 보살펴 주는 책이라면 아이들한테도 분명 사랑받지 않을까 하는 믿음을 가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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