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출판사 블로그

 

《어린이 문화 운동사》
글쓴이 이주영

 

 지난 4월 2일, 《어린이 문화 운동사》출간 기념 강연을 했다. 강연을 준비하면서 어린이문화연대 노병갑 운영위원장과 송정희 국장이 몇 명이나 올지 걱정된다고 했다. 어린이 문화 운동이라는 말에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책 제목을 정할 때도 염려가 많았다. 이런 제목으로 낸 책이 얼마나 팔릴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이 문화 운동에 대한 글을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읽도록 하려면 제목이라도 좀 나긋나긋하고 산뜻하게 해서 독자들 관심을 끌도록 붙이는 게 좋지 않겠는가라는 의견도 많았다.

 다행히 어린이문화연대 각 단체와 활동가들이 적극 참여했고, 아직 연대를 맺지 않았던 새로운 단체에서도 임원들이 오고, 멀리 부산을 비롯한 지방에서까지 올라와서 강연장을 가득 채웠다. 몇몇 언론에서도 관심 있게 취재했고, 전교조 초등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우리아이들〉에서도 5월 특집으로 실을 수 있게 글을 써 달라고 했다. 5월 7일은 시흥 은행나무도서관에서 어린이 문화에 대한 강의를 하기로 했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여기저기서 관심을 가져 주어서 다행이다. 취재 온 기자 한 명은 어린이 문화 운동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면서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데 그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세 살 된 딸을 키우고 있는데, 아이를 낳아 키워 보니 정말 우리 사회 환경이 어린아이를 키우기에 너무 형편없다는 걸 알게 되었단다.〈개똥이네 집〉이나 〈개똥이네 놀이터〉라는 잡지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며 고맙다고 했다.  

 사실 이 책은 〈개똥이네 집〉이 아니면 나올 수 없었다. 1970년대에 이오덕 선생님을 만나고, 1980년에 어린이도서연구회를 만들었다. 그 뒤로 여러 갈래 어린이 교육 문화 예술 단체와 함께 하면서 어린이 운동을 해 왔다. 그 가운데 틈틈이 이런저런 책과 자료에 흩어져 있는 어린이 운동 역사를 살펴보면서 1920년대 방정환 선생님이 시작한 어린이 해방 운동을 어린이 문화 운동의 출발점으로 잡았다. 역사는 기억하는 사람들한테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만이 그 역사를 이어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다. 그런 뜻에서 어린이들이 사람답게 살아남기에는 너무나 형편없는 현실, 우리 사회는 물론 인류 사회가 직면한 현실을 바꿔, 희망이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린이 운동을 기억해야 한다.

 1920년대 시작한 어린이 운동부터 마해송과 이원수를 거쳐 이오덕 정신으로 되살아나는 어린이 문화 운동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강물이 시작하고, 그 물줄기가 어떻게 흘러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대강이라도 알아야 방향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잊어버린 어린이 운동 역사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그 흐름을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도록 써서 남겨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에 실은 글은 이런 마음으로 쓴 글이다. 〈개똥이네 집〉53호(2010년 4월 호)부터 ‘어린이 문화 운동사’를 쓰게 되었다. 그때부터 달마다 마감을 지키기 위해 내 힘을 다 했다. 기억 속에 파편처럼 남아 있는 기록들을 찾기 위해 책과 자료들을 다시 뒤져야 했다. 기억이란 참 묘했다. 분명히 그 책을 언제 어디서 구해서 읽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막상 어렵게 그 책을 다시 찾아서 훑어봐도 내가 기억하는 내용이 없을 때가 있다. 몇 번을 뒤적이다가 할 수 없이 처음부터 다시 꼼꼼하게 정독을 해야 한 구석에서 단 몇 줄로 되살아났다. 어떤 경우에는 끝까지 다 읽어도 없어서 ‘내가 마음대로 내 기억을 만들었나?’ ‘그동안 내가 거짓말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당혹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래서 거의 다 써 놓았던 글을 버리고 다른 주제나 소재로 바꿔서 쓴 것도 여러 번이다. 그러다 다른 자료를 찾다가 어느 날 우연하게 기억에 남아 있던 내용이 실려 있는 책이나 자료를 찾으면 정말로 기뻤다. 이렇게 해서 2013년 10월, 95호까지 사십 여 회를 연재했다.
 연재를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를 돌아보니, 참 일이 많았다. 서울시 교육감으로 곽노현 교육감이 당선되어서 서울교육 혁신을 추진하다가 후퇴하게 되었고, 나는 기스트라는 희귀암 판정을 받아 퇴임해서 3년 동안 투약 치료로 암세포를 줄인 다음에 위와 간에 남아 있던 암세포를 개복수술로 떼어 내다 죽을 뻔하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박원순이 서울시장에 당선되어서 어린이 교육과 문화 정책에 작은 변화가 생기고, 어린이문화연대가 세워진 뒤 흩어 있던 어린이를 위한 단체들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연대할 수 있는 틀이 잡혀 가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 문화 운동 개념이 우리 사회에 조금씩 틈을 내면서 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 책은 1920년대부터 오늘까지 백년 가까이 흘러내린 어린이 문화 운동이라는 물줄기를 대강이라도 살펴 볼 수 있도록 흐름을 정리했다. 2013년 11월 호부터는 각 단체를 중심으로 어린이 문화 운동사를 쓰고 있다. 내가 쓰기도 하고 각 단체 활동가들이 쓰기도 했다. 앞으로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름 없이 소리 없이 어린이 문화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 그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작고 맑은 시냇물 흘러가는 이야기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아니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나서 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어린이 문화 운동사》 2권, 3권으로 계속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천도교 본당 앞에 가면 ‘세계어린이운동발상지’라는 빗돌이 있다. 이 빗돌에 새긴 글이 결코 과장이나 헛말이 아니다. 방정환을 비롯한 1920년대 어린이 해방 운동가들이  시작한 어린이 문화 운동은 세계 어린이 운동사에서 정말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 의미를 우리 겨레 역사는 물론 인류 역사에서도 살려 내야 한다. 우리 한반도 아이들 모두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날을 위해서, 우리 지구촌 아이들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날을 위해서, 어린이 문화 운동이 살아나야만 한다.    
               
 이 나라에 사람이 있는가?
 아직도 이 나라에 사람이 있다면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
 그들을 가두어 놓은 쇠창살 우리를 헐어
 풀어놓아 사람의 자식으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
                -이주영, 《어린이 문화 운동사》, 218쪽

 

 이오덕 선생님이 유서처럼 써 놓으신 ‘아이들이 없다’는 시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이 나라에 사람이 있다면 어린이 삶을 지키고 가꿀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일에 함께 나서 주기를 소망한다. 이 책이 초판이라도 쉽게 나간다면 그 소망이 조금이라도 더 희망으로 다가설 것 같다.

 

*<개똥이네 집> 102호 '마음으로 만든 책'에 실린 글을 옮겼습니다.

션

2014-04-29

개똥이네 놀이터에서 재밌게 놀고 싶습니다.

댓글을 남겨주세요

※ 로그인 후 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