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5일, 여섯 번째로 강정마을을 찾았다. 며칠 전 내린 눈이 한라산 정상을 하얗게 덮고 있었다. 강정마을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은 품이 넓고 푸근하다. 가만히 보면 정말 설문대 할망이 서귀포를 품고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강정마을을 처음 찾은 것은 지난여름이었다. 7월 19일 아침, 태어난 지 3만 년이 된 구럼비 너럭바위를 처음 밟은 그 순간 느꼈던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길이가 1.8킬로미터나 되는 바닷가 퇴적층 덩어리인 구럼비 바위는 멸종 위기에 놓인 붉은발말똥게, 제주새뱅이, 맹꽁이가 사는 바위 습지였다. 그날 아이들과 맨발로 구럼비 바위를 걷고 통물에서 놀면서 왜 강정마을 사람들이 제주해군기지를 강력하게 반대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알게 된 것은 지난 2008년 겨울, ‘평화바람’이 강정마을을 돕기 위해 평화상단을 만들었을 때였다. 그러나 용산 남일당 참사가 일어나면서 제주해군기지 문제에 계속해서 관심을 갖지 못했다. 가끔 신문이나 인터넷 신문에 짧게 올라오는 기사를 보면 제주해군기지 사업은 강정마을 사람들에게 불가항력인 걸로 보였다.
2010년 가을, 제주해군기지 공사가 시작되었다는 기사는 그런 체념을 더 굳히게 했다. 그런데 올봄,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에 맞서 싸우는 주민과 활동가들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놀라웠다. 강정 주민들이 무려 4년 반이 지났는데도 해군과 싸우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부끄러웠다. 죄송했다.
6월 말 천주교정의구현연합에 있는 후배한테 전화를 받았다. 우리 작은 학교 아이들이 강정마을을 방문해 보면 어떻겠느냐는 말이었다. 문득 작년 여름 양평 두물머리에서 했던 ‘개구리 한솥 밥’ 공연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우리가 한 인형극이 누군가에게 작은 격려가 될 수 있다는 것에 기뻐했다. 용산 남일당, 대추리에서도 인형극을 공연하며 힘없는 이들에게 ‘연대’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경험한 아이들이었다. 작은 학교 이모 삼촌들은 최소 인원만 제주에 가기로 하고 아이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마침 희망버스에 참여하며 힘없는 이들과 나누는 연대를 체험한 탓인지 흔쾌히 좋다고 했다.
제주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은 구럼비 바위를 보고 탄성을 질렀다. 아이들은 한라산 아래 바닷가를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정겨운 집들, 감귤과 화훼 비닐하우스, 은어가 사는 강정천을 보며 말했다. “이모, 해군기지는 미친 짓이에요. 무조건 막아야 해요.”아이들은 자신들이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 만든 현수막 들고 해군기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해군과 주민 사이에 벌어진 몸싸움에 휘말려들기도 했다. 아이들이 강정마을에 머무는 사흘 내내 긴장이 감돌았고, 결국 인형극을 보여 주려던 아이들 계획은 무산되었다. 인천으로 돌아가기 전날 밤, 아이들은 공연을 못 한 것보다 강정마을을 두고 떠나는 것이 더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정마을 소식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겠다고 다짐했다.
그 뒤 강정은 계속 우리를 불렀다. 문정현 신부님 평전 《다시 길을 떠나다》 출판기념회, 평화비행기, 천주교 연대 출범식 따위로 계속 강정을 찾았다. 그 사이 중덕해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막히고, 구럼비 바위가 깨져 나갔다. 주민과 평화 활동가들이 계속 구속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페이스북이나 카카오 톡 같은 SNS로 강정 소식을 알리고 어쩌다 청탁 받은 글에다 강정마을 이야기를 쓰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개똥이네 놀이터〉에 강정마을 이야기를 해 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강정마을 이야기란 말에 앞뒤 재지 않고 덜컥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곧 후회했다. 아직 어린 개똥이네 독자들에게 날마다 비상 경보가 울리고 레미콘을 몸으로 저지해야 하는 강정마을 주민과 평화 활동가들의 하루하루를 어떻게 동화로 들려주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런데도 300년 동안 이어 온 마을 공동체 이야기, 통물, 정의논깍, 강정천과 은어, 악근천, 큰강정물, 냇길이소 들이 지닌 신비를 〈개똥이네 놀이터〉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욕심을 접을 수 없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나만큼이나 강정마을과 구럼비 바위에 빠진 작은 학교 젊은이들이 삽화 작업에 참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미 강정마을에 두세 번씩 오가며 뭔가 도울 일을 찾던 대학생 단비와 성수, 작은 학교에 다니며 만화를 그리는 열일곱 살 연수, 그리고 《모여라 유랑인형극단》을 함께 작업했던 만화가 오정희에게 함께 작업하자고 했다. 네 사람은 강정마을을 알릴 수 있는 일이라는 말에 솔깃해 하면서도 선뜻 대답을 못했다. 그동안 함께 인형극을 해 와 손발이 잘 맞는 친구들이었지만 동화 삽화를 그린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 친구들 그림을 본 뒤 〈개똥이네 놀이터〉에서는 같이 작업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개똥이네 놀이터〉에 강정마을 이야기를 연재하기로 결정을 한 뒤 강정마을을 다시 찾았다. 사흘 동안 주인공으로 삼은 은지와 미리내(동화 속 이름)를 따라다녔다. 그러다 보니 미처 보지 못한 강정마을 구석구석을 만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내가 아직까지도 내 관점으로만 강정마을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은지와 미리내에게 해군기지는 어떤 존재일까 곰곰이 생각했다. 해군기지는 은지와 미리내의 놀이터인 구럼비 바위를 빼앗은 존재이고, 식구들과 지내는 평범한 일상을 깬 존재였다. 해군기지반대 싸움이 시작된 뒤 마을에는 경찰이 상주하고 툭하면 이른 새벽 비상 경보가 울렸다. 아무 잘못도 없는 고모와 엄마가 경찰서에 잡혀가고 친하게 지내던 이웃집 동무와 서먹한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해군기지반대 싸움은 새로운 언니와 오빠, 이모랑 삼촌을 만나게 해 주기도 했다.
은지와 미리내가 저녁마다 촛불을 드는 까닭은 아빠가 걱정 없이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우는 감귤이 비산 먼지에 죽지 않고 잘 자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또 그 촛불 문화제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마음을 나누고 노래와 춤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은지와 미리내가 참말로 바라는 것은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해군기지건설을 거두어들여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강정마을 사람들은 육지 사람들이, 아니 같은 제주에 사는 사람들마저 무심했던 4년 동안에도 포기하지 않고 해군기지를 반대해 왔다. 그 무심한 사람들 속에 나도 있었다. 그 무심함에 대해 사과하는 마음으로 〈개똥이네 놀이터〉에서 강정마을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언젠가는 은지와 미리내가 다시 봄이 오는 강정천에 나가 개울을 거슬러 오르는 은어를 반기고, 여름이면 강정천과 구럼비 바위에서 멱을 감으며 행복하게 뛰어 놀게 될 것이다. 그 때 〈개똥이네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들이 다 같이 강정마을로 놀러 가면 좋겠다. ‘너영 나영 구럼비에서 놀자’가 〈개똥이네 놀이터〉 독자들을 강정마을로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면 좋겠다.
'너영 나영 구럼비에서 놀자' 작가 김중미 선생님이 <개똥이네 집> '마음으로 만든 책'에 쓰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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