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이네 놀이터>를 지켜 주세요
조병범 (보리출판사 상무이사)
보리출판사 자부심의 뿌리 ‘개똥이’
‘개똥이’는 옛 어른들이 아이들을 부를 때 쓰던 말입니다. 귀한 아이일수록 막 키우라는 옛 어른들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옛 어른들이 시골 마을에서나 쓰던 말을 지금도 널리 쓰는 말로 되살린 곳은 바로 보리출판사(아래부터 보리)입니다.
보리가 ‘개똥이’라는 말을 쓴 역사는 2001년 〈올챙이 그림책〉을 〈개똥이 그림책〉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시작합니다.〈올챙이 그림책〉은 1991년에 펴낸 우리 나라 최초의 창작 그림책이자 10년 동안 40만 질 이상, 그러니까 2천만 권 넘게 팔린 책입니다. 그 시절 오랜 기간 꾸준히 팔려 온 어린이 전집은 〈올챙이 그림책〉과 〈달팽이 과학동화〉 말고는 없었습니다. 〈달팽이 과학동화〉 또한 보리가 개발해 만든 책입니다.
그때 당시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와 어린이들은 〈올챙이 그림책〉과 〈달팽이 과학동화〉를 모두 알다시피 했습니다. 그만큼 책에 대한 믿음이 컸기 때문입니다. 글과 그림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높은 수준이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 바른 가치관을 심어 주는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올챙이 그림책〉에 대한 독자들의 믿음은 그대로 〈개똥이 그림책〉으로 이어집니다. 보리는 2001년에 ‘개똥이’, 2005년에 ‘개똥이네 놀이터’를 특허청에 정식으로 상표 등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2001년에는 전집 〈개똥이 그림책>(모두 60권)을 펴냈습니다. 보리는 〈개똥이 그림책〉으로 ‘개똥이’라는 이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었습니다. ‘개똥이’라는 이름을 되살려 씀으로써 우리말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했습니다. 이는 우리말을 낮춰 보는 인식뿐 아니라 우리 나라, 우리 민족에 대해 다시 보게 한 것이기도 합니다.
방정환과 이오덕 정신을 이어 만든 어린이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
‘개똥이’라는 이름은 2005년 12월 창간한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로 뻗어 나갔습니다. 〈개똥이네 놀이터〉는 평생을 어린이를 위해 헌신하신 이오덕 선생님의 오랜 꿈이었던 어린이 잡지입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방정환 선생님이 꾸리던 잡지 〈어린이〉를 이어받아 어린이들을 위한 잡지를 만들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 꿈을 보리가 이어받아 어린이 종합 월간지 〈개똥이네 놀이터〉로 실현했습니다. 2005년 12월 창간호부터 정기 구독을 신청한 독자만도 3,820명이나 될 정도로 호응이 컸습니다. 창간 뒤 지금까지 발행한 부수만도 2,741,800권에 달합니다.
어린이 살리기 운동 차원에서 창간된 〈개똥이네 놀이터〉의 보급을 위해 어린이문화연대를 만들고, 거기에 참여한 단체 일부만 대더라도 (사)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사)어린이도서연구회, 마주이야기연구소, 어린이문학협의회, 극단 민들레, (사)남북어린이어깨동무, (사)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학교도서관네트워크, 국악놀이연구소, 박물관학교 들처럼 굵직한 곳만도 여럿입니다.
보리는 〈개똥이네 놀이터〉를 창간하면서 마찬가지로 특허청에 상표 등록을 했습니다. 잡지 표지에 쓰고 있는 〈개똥이네 놀이터〉 제호는 화가와 디자이너가 만든 개인 창작물입니다. 2005년 12월 창간호가 나온 뒤부터 지금까지 십삼 년 넘게 친숙하게 만나고 있는 바로 그 글씨입니다.
〈개똥이네 놀이터〉의 상표를 무단으로 베낀 유아 중고서점 ‘㈜개똥이네’
2008년 무렵부터 충북 청주에서 시작된 중고서점 ‘㈜개똥이네’는 보리에서 정식으로 상표 등록한 ‘개똥이’와 〈개똥이네 놀이터〉 상표를 도용하여 온라인 및 오프라인 매장을 열고, 중고와 신간 서적을 팔아 왔습니다.
㈜개똥이네가 간판을 내건 2008년은 〈개똥이네 놀이터〉를 창간한 지 4년이 되던 해이고, 〈개똥이네 놀이터〉에 연재해 온 훌륭한 꼭지들을 모아 단행본으로 펴내는 ‘개똥이네 책방’ ‘개똥이네 만화방’ 시리즈를 만들기 시작한 해이기도 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보리에서 ‘개똥이’는 ‘보리’와 거의 같은 무게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무단으로 가져다 쓴 것입니다.
㈜개똥이네는 한글과컴퓨터사가 만든 ‘한글’ 프로그램의 ‘휴먼매직체’를 변형시킨 글자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보더라도 ㈜개똥이네의 글꼴은 〈개똥이네 놀이터〉의 곡선형 글꼴을 흉내 낸 것으로 보이지 ‘휴먼매직체’의 직선형 글꼴에서 파생되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결국 2017년부터 보리는 유아 중고서점 ㈜개똥이네를 상대로 상표권 침해 금지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거대 유통자본의 손을 들어준 1심 재판부
지난 2018년 7월 17일, 1심 재판부는 〈개똥이네 놀이터〉와 ㈜개똥이네의 상표가 “유사한 상표에 해당한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개똥이네가 오랫동안 상호를 써 왔고, 회원 수나 그간 쓴 광고비도 많으므로 부정경쟁행위로 볼 수 없다며 ㈜개똥이네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1심 재판부의 논리대로라면 타인의 상표를 도용해 오랫동안 상표를 써도 주지성과 지명도를 갖춘다면 상표권 침해나 부정경쟁행위도 아니게 된다는 납득할 수 없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성공한 쿠데타는 죄가 되지 않는다’는 궤변과 다를 바 없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워낙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점점 중고서점 시장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알라딘, 예스24, 교보문고, 인터파크 같은 대형 온라인 서점들도 중고서점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알라딘이 중고서점을 선점한 상황에서 ㈜인터파크는 ㈜개똥이네에 43억이란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하였습니다. 2017년 2월, 24개이던 ㈜개똥이네 매장은 2018년 5월, 42개로 늘어났습니다.
〈개똥이네 놀이터〉를 아는 독자들은 보리와 〈개똥이네 놀이터〉가 유아 중고서점 ㈜개똥이네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하루에도 여러 차례 ㈜개똥이네와 관련된 문의 전화가 보리로 걸려 와 일하는 데 방해마저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두 곳 다 ‘개똥이네’라는 말과 비슷한 글씨체를 쓰고 있지만 그 의미는 엄연히 다릅니다. 보리에서 만든 〈개똥이네 놀이터〉는 우리 교육이 학습으로만 달려갈 때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아이들이 일 년 열두 달 철 따라 달라지는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게 해 주며 놀면서 배우는 이야기를 다달이 담아내려 애써 왔습니다. 잡지라서 도서정가제 적용 대상은 아니지만 출판 유통 질서를 해치지 않기 위해 도서정가제도 엄격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유통 업체에 높은 공급률로 책을 주어 책값도 지키도록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개똥이네는 어린이 전집을 싸게 할인 판매하는 곳으로 ‘덤핑’을 주로 합니다. 일반 독자가 자기 집에서 보던 책을 헌책방에 내놓아 싸게 판다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렇지만 ㈜개똥이네에서 파는 책들은 일반 독자가 보던 헌책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고 ‘새 책 같은 중고책’ ‘리퍼 상품’ ‘새 책 수준 도서’ ‘미개봉 새 책’ 따위 문구를 쓰며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도서정가제 준수를 위한 출판사와 유통사 사이 자율 협약을 위배하는 행위입니다.
출판 유통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을 막고자 하는 싸움
보리는 ㈜개똥이네와 소송을 하면서 처음부터 원칙을 세웠습니다.
‘〈개똥이네 놀이터〉의 상표와 이미지를 도용하며 사업을 시작한 업체이지만 간판을 내리게 할 수는 없다. 다만 출판 유통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업을 계속하게 할 수 없다. 건강한 동네서점의 역할을 하고, 아이들을 살리는 운동을 같이 해야 한다.’
따라서 매장마다 〈개똥이네 놀이터〉 정기 구독을 받고, 보리에서 펴내는 책도 판매하며 상생할 수 있는 동네서점으로 거듭나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개똥이네는 보리의 이러한 제안을 무시하고 유통 질서에 대한 고민은 전혀 하지 않은 채 터무니없는 금액으로 그저 입막음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동안 ‘개똥이네’라는 상표를 무단으로 써 온 것에 대한 보상은커녕 자기네 상호로 마음대로 가져다 쓴다는 조건을 내밀어 협상이 될 리가 없었습니다. 결국 ㈜개똥이네에 거액을 투자한 ㈜인터파크 대표마저 보리출판사를 다녀가기에 이르렀습니다.
앞선 입장과 마찬가지로 보리는 ㈜개똥이네와 상생의 길을 찾아보고자 하였으나 보리가 받은 것은 어처구니없는 재판 결과였습니다. 1심의 판결문이 판결 직전에 제출한 ㈜개똥이네 측 주장만 거의 베끼다시피 했다는 것, 사실 관계가 다른 것뿐만 아니라 판사가 여러 차례 해 오던 말과 완전히 다른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개똥이네가 승소한 판결의 가장 큰 근거가 2008년부터 계속 영업을 하고 있어 상표를 못 쓰게 할 수 없다는 궤변이었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이 일을 어찌 알려야 하나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개똥이네 놀이터〉를 창간하고 나서 잡지로 돈을 벌지는 못하였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지금까지 어린이 잡지를 내는 까닭은 어린이들에게 제대로 된 잡지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이오덕 선생님의 뜻을 잇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개똥이네 놀이터〉가 ㈜개똥이네한테 계속 피해를 보고, 심지어 재판에서도 지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요? 아무리 거대 자본을 가진 곳이라 할지라도 출판 유통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는 그만두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공정해야 할 법원이 거대 자본의 손을 들어 주다니요.
힘겨운 싸움이 될지라도 보리출판사는 법정에서 올바른 판결을 받을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보리와 〈개똥이네 놀이터〉에 힘이 되어 주십시오.
* 이 글은 <개똥이네 집> 9월호 '개똥이네 세상 보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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