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출판사 블로그

지난 11월 7일,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에서 있었던 '이오덕 권정생 선생님을 되새기는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 태어나신 84주년 기념하여 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이 30년을 주고 받은 편지를 읽으며,
두 분이 남긴 뜻을 어떻게 이어받아 살아가야 할까를 생각하는 모임입니다.
두 선생님 시에 백창우 선생님이 곡을 붙인 노래도 배웠습니다. 우리말 노래 배우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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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이 30년을 주고 받은 편지 이야기.

아래 글은 2003년 9월 13일, KBS에서 방영된 <아름다운 유산, 이오덕의 편지>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권정생과 세상 사이의 길은 그의 집앞에 난 길만큼이나 좁고 가늘다.
그는 세상 밖에 있는 사람 같았다.

세상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던 이 길로 어느 날 한 벗이 찾아왔다.
그로부터 권정생의 편지가 시작됐다.

바람처럼 오셨다가 많은 가르침을 주시고 가셨습니다. 일평생 처음으로 선생님 앞에서 마음 놓고 투정을 부렸습니다. 출생지가 남의 나라였던 저는 여지껏 고향조차 없는 외톨박이로 살아왔습니다. 아홉살 때 찾아온 조국이 왜 그토록 정이 들지 않는지요. 늘 소외당한 이방인이었습니다. 선생님을 알게 되어 이젠 외롭지 않습니다.

찾아간 이는 이오덕이었다. 이오덕이 생명부지였던 권정생을 찾아간 건 한 편의 동화를 읽고 난 직후였다. 조그만 기독교 잡지에 실렸던 <강아지 똥> 이라는 동화 한 편.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 보이는 강아지똥 한 줌이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거름이 되어 민들레 꽃으로 피어난다는 얘기다. 동화는 세상에 쓸모 없는 것들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권정생의 이 동화는 이오덕을 감동시켰다. 당시 이오덕은 40대 중반, 이미 55년에 진달래꽃이라는 동시로 등단했고 71년에는 동화와 수필이 동시에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주목받는 아동문학가로 자리잡은 중견이었다.

이오덕은 72년 가을 권정생을 찾아간다. <강아지똥>이라는 동화 한편이 그의 길을 재촉했다. 그때 권정생은 안동의 작은 교회에 머물고 있었다. 권정생은 회복이 어려운 전신결핵 환자였고 그 몸으로 새벽마다 종을 치고 살아가는 종지기였다.

권정생의 나이 36, 이오덕과는 12년 차이었다. 이오덕은 권정생의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 때 첫 인상을 이오덕은 "다만 동화를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고 표현했다.
 
이오덕은 산골 초등학교의 교사였다. 두 사람의 삶은 아동문학 속에서 만났고 30년간의 편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오덕 선생님,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떳떳함만 지녔다면 병신이라도 좋겠습니다. 양복을 입지 못해도 장가를 가지 못해도 친구가 없어도 세끼 보리밥만 먹고 살아도 나는, 나는 종달새처럼 노래하겠습니다.

답장도 이어졌다. 12년간의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이오덕은 권정생에게 단 한번도 하대한 적이 없었다. 존경과 우정은 정중하고도 간절했다.

산골에 있어도 할미꽃 한번 못보고 진달래 한번 찾아가보지 못하는 일과입니다. 산허리에 살구꽃 봉오리가 발갛게 부풀어 올라 아침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괴로울 때마다 선생님을 생각해 봅니다. 이번 여름 방학에는 꼭 가 뵙겠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좋은 작품을 써주시길 빕니다. 서울서 원고료 온 것이 있길래 만원 부칩니다. 보태어 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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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인 73년 이오덕은 권정생의 신뢰에 화답이라도 하듯 <무명저고리와 엄마> 라는 작품으로 신춘 문예에 당선된다.

권정생은 여전히 가난한 종지기였다. 새벽마다 종을 치며 동화를 한 편 한 편 써나갔다. 권정생이 글을 쓴다는 것은 거의 사투에 가까웠다. 약도 듣지 않는 전신 결핵. 그 몸으로 원고지 한 장을 쓰자면 열번도 더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해야만 했다.


십여일 동안 몸이 불편했습니다. 병원에 가보면 영양 섭취를 많이 하라고 합니다.
쓸데 없는 줄 알면서도 일년에 한두 차례는 병원에 갑니다. 종합진단, 투약, 심신 안정. 밥맛이 통 없습니다. 남한테는 보리밥이라도 잘 먹는다고 장담하지만 어머니가 무쳐주시던 무생채 생각이 자꾸 납니다. 고사리 무침도, 산나물도, 그리고 어느 핸가 살진 암탉을 잡아 찹쌀을 넣어 끓인 닭곰국이 꼭 한 주발이라도 먹었음 싶어요. 이것도 살아있다는 증거인가 보죠. 선생님 꼭 좋은 동화 쓰겠습니다.


권정생은 작품이 써지는 대로 이오덕에게 보냈다. 그러면 이오덕은 작품이 발표될 지면을 찾아다녔다. 권정생은 쓰고 이오덕은 발표하고 그 때부터 둘의 역할은 그렇게 정해졌다.

아동문학가협회에 기고한 지에는 고료가 나오지 않으니 우선 다른 잡지나 신문에 나올 수 있도록 뛰어 다니고 있습니다. 서울의 소년 조선이나 소년 한국등과 그 밖의 아동잡지를 알아봤지만 60매짜리는 실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구 매일신문에는 왠만하면 실어주겠지 기대하면서 대구에 내려와서 문화부를 찾아가 부탁했더니 거기서도 난색을 보였습니다. 워낙 제가 무능해서 이 모양이 되었으니 그저 용서를 바라고 싶습니다.

저 때문에 너무 애쓰지 마시길 바랍니다. 올해도 보리밥 먹고 고무신 신으면 너끈히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가난한 것이 오히려 편합니다. 며칠 전에 시내에 나가 원고지 천장을 사왔습니다. 죽기 전에 써야 할 것을 어서 써야겠다고 자꾸 초조해집니다. 아까부터 소쩍새가 자꾸 웁니다.

동화 한 편 더 보내 주시면 상경하는 길에 어느 잡지에나 싣게 되도록 하겠습니다. 권선생님의 작품집이 출판되도록 해야 할 것인데 며칠 밤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여러가지로 선생님을 돕고 싶은데 저의 능력이 부족해서 뜻대로 안됩니다.


 이오덕은 왜 그토록 권정생을 알리는 일에 자신을 바쳤던가? 그것은 당시의 아동문학에 대한 이오덕의 문제 의식에서 출발했다. 이오덕은 평생을 잘못된 아동문학과 싸운 사람이었다.

"아이들이 쓰는 동시가 있습니다. 교과서에서도 동시라고 하고, 동시 쓰는 방법을 가르치는데요,
거울은 거울은 바보..
그림자는 그림자는 바보..
이런 글은 아이들의
생활과 동떨어진 머릿속에서 쓴 글입니다."

이오덕의 대안은 아이들이 쓴 글이었다. 아이들의 글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한 자 한 자 설명을 붙였다. 그는 아이들이 직접 쓴 글이 얼마나 아름다운 동시가 될 수 있는지 증명해 낸 사람이었다. 평생의 보물로 여긴 아이들의 글과 그림들, 이오덕은 한 장 한 장의 글과 그림을 모아 그것을 책으로 엮어 냈다.


이오덕의 글쓰기 교습법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여기저기에서 아이들의 문집
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작은 문집들이 만들어 질 때마다 이오덕은 일일이 읽어보고 장문의 감상문을 보냈다.

"얼마나 저는 기분이 좋았는지 모릅니다. 인쇄 상태도 희미하고 그랬는데 겉모양이나 그럴 걸로 보면 문집이라고 봐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아이들의 글 하나 하나,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 끼어 있는  아이들이 손으로 그린 그림 이런 것을 보시고는 칭찬을 해주셨는데 "<이 섬에서 크는 나무>는 역사적인 문집입니다." 이렇게 평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이런 편지를 받고 그 힘으로 해마다 꼬박꼬박 한차례에서 서너차례까지 학급 문집을 펴냈습니다."

"닷새만에 소포가 하나 왔습니다. 소포를 열어 보니까 선생님이 원고지에 6~70장 되도록 편지를 써주셨습니다. 아이들 글 하나하나에 대한 비평, 이 편지를 받고 그 자리에서 꿇어 앉았습니다. 이런 분이 계시구나..."

- 이오덕 선생님의 감상문을 받은 선생님들-


글이라고 하는 것은 전문적이고 특별한 사람이 아름답고 특별한 이야기를 화려하고 예쁘게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을 바꿔 놓으신 분. 삶과 동떨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쉽고 진솔하게 쓰는 것.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다.

이오덕이 말년까지 애정을 가지고 헌신했던 분야도 바로 어린이 글쓰기 교육이었다. 그는 움직이기도 힘든 몸을 이끌고 교사들의 모임, 글쓰기 연구회참석했다. 글쓰기 연구회는 이오덕의 교습법에 따라 아이들을 가르치고자 하는 모임이다. 이오덕이 뿌린 씨앗은 이제 국어 교육의 정석이 됐다.

이오덕이 평생 강조해 온 것은 삶의 글이었다. 지식의 글이 아닌 삶의 글. 40대 어느 날 이오덕은 권정생에게서 그 희망을 보았고 평생 그 희망을 지켰다.

남들이야 무슨 말을 하든 저는 선생님의 작품을 참으로 귀하고 값진 것으로 아끼고 싶습니다. 우편환으로 칠천원 붙여 드립니다. 우선 급한대로 양식과 연탄 같은 것 확보하십시오. 요즘 출판 사정이 악화된 것 같은데 어떻게 해서라도 선생님 책이 나오도록 하겠습니다. 이 편지 써두고 인편을 기다리다가 안되어 오늘 전신환으로 돈을 부쳤습니다. 저는 이번 3월 1일자로 전근이 되어 또다시 산골로 옮겨 왔습니다. 춘양서 한시간 이상을 걸어 재를 오르고 산등을 타고 걸어야 하는 벽촌입니
다. 선생님을 생각하면 불편이고 뭐고 너무 사치한 소립니다. 선생님이 계신 안동에서 더 멀리 떨어지지 않게 된 것이 다행입니다. 저도 선생님을 결코 잊지 않고 살아가려 합니다.


이오덕은 권정생의 책을 내기 위해 일요일마다 서울을 오갔다. 그는 마치 외판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권정생의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 다녔다.

지금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 중입니다. 4월 3일 밤에 서울에 도착해서 이튿날 계몽사에 가니 전에 맡겨 놓은 장편 동화를 검토도 못했다 하면서 미안해 합니다. 아동 책이 통 안나가서 일체 출판을 못하고 있다고 해서 원고를 도로 인수했습니다. 다시 어디 편지로 교섭해서 연재라도 할 수 있도록 힘써 보겠습니다. 일전에 소년 조선에 가서 선생님 동화 연재를 부탁했더니 8월쯤 가서 다시 얘기해 보자고 했습니다. 기별 오는 대로 편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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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74년 권정생의 첫 동화집 <강아지똥>이 나왔다. 그 책으로 권정생은 제 1
회 아동문학상을 수상한다. 책 출간은 권정생에게 얼마간의 여유를 주었다. 그러나 가난과 결핵으로 인한 고통은 여전했고 그는 여전히 가난한 종지기였다.

모두가 가
난한 시절이었고 동화책의 판매는 신통치 않았다. 권정생도 이오덕도 그런 건 개의치 않았다.




백만명의 독자보다 단 백명의 가난한 그러나 슬기로운 어린이들이 읽어준다면 더 기쁘고 보람있는 일이죠. 부디 몸조심하시고 글 너무 쓰지 마시고 쉬시도록 바랍니다. 선생님은 좀 더 오래 사셔야 합니다.



권정생의 동화집은 계속 발간됐다. 가난한 무명 작가와 중견의 아동문학가가 만나
이뤄낸 성과들이었다. 그렇게 권정생이라는 작가는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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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은 권정생의 작품만이 한국 아동문학의 희망이라고 봤고 그것을 지키는 일이 자신의 의무이며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래서 권정생 선생님 세상에 알려지고 그랬다고 생각 안합니다. 훌륭한 작가는 결국 드러나기 마련이죠. "

이오덕이 권정생을 그렇게 최고의 작가로 여긴 건 그가 바로 삶의 글을 쓰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슬픈 나막신>에서 권정생은 자신의 유년 시절을 담았다. 권정생은 37년 도쿄 변
두리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식민지 이주민의 생활을 처참했고 그 때 기억은 평생
동안 권정생을 따라다녔다.


우리집은 아버지께서 주워다 놓은 쓰레기가 뒤란 처마밑에 꽉꽉 쌓여 있었습니다. 그 퀴퀴한 곰팡내는 아직도 내 코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동경 거리를 쓰는 청소부 아버지, 열두살 짜리 누나도 공장에 나갔다고 했습니다. 집안은 언제나 비어 있었습니다. 몸서리쳐지도록 무섭고 지루하고 쓸쓸했던 나날이었습니다. 전쟁에 시달리던 당시를 회상하면 지금도 땀이 흐릅니다.


권정생은 해방 이듬 해 귀국한다. 아홉살이었다. 집안은 여전히 가난했다. 결핵의 증세가 시작된건 열아홉. 가난은 병을 키웠고 제때 치료하지 못한 결핵은 평생 그를 따라다니는 천형(天刑)이 됐다. 이오덕은 권정생의 그런 삶이 불행했던 우리 현대사 그 자체라고 봤다.

혹 자신의 체험을 그대로 쓰는 수기같은 걸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이 말은 선생님이 동화작가로 적당치 않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선생님이 살아오신 역사는 세상 사람들에게 알릴 보람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보고 문학이나 자서전 같은 것인 훌륭한 문학 작품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화를 쓰시는 것이 선생님의 본 길이고 다만 그 길에 전념하기 위해 남은 생명을 바치시는 선생님인데 행여 마음을 어지럽히지는 않았는지 죄송합니다.


권정생은 <몽실언니>로 화답했다. <몽실언니>는 불행했던 현대사를 관통했던 그 자신의 삶이었다.

 <몽실언니>는 우리가 묻어 두고 싶었던 아픈 기억들을 모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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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집어 낸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도망가는 어머니, 의붓 아버지 밑에서 천덕꾸
러기가 되어 버린 몽실이, 몽실이는 절름발이가 된 채 쫓겨나고 만다.
가난해서 오
직 가난해서 벌어진 모든 일. 전쟁터에서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아버지는 새어머니를 들이고 이내 배다른 동생 남남이가 태어난다. 얼마 후 새어머니 북촌댁마저 숨을 거둔다.
몽실이는 식모 살이를 하며 남남이를 거둬 먹인다. 아버지는 머슴 살이
를 떠나야 했다. 그 와중에도 전쟁은 계속 되고 몽실이의 삶은 위태롭게 진행된다. 친어머니마저 세상을 뜬다. 의붓아버지와의 사이에서 난 영순이와 영득이까지 이제 몽실이의 몫이 됐다.
병든 아버지를 고쳐 보기 위해 자선 병원을 찾아가지만 돈
있는 사람에 밀려 거리에서 숨을 거둔다. 도무지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삶. 그래도 몽실이는 살아야 한다고 사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몽실이는 그렇게 가장 전형적인
한국의 삶을 산다.

원고를 쓰는 내내 권정생은 고통스러워 했다. 몽실이의 삶은 기억하기도 싫은 그 자신의 삶이었다.

이틀간 가까스로 원고 스무장을 썼습니다. 얘기가 비참해서 쓰는 게 고통스럽습니다. 비록 아동소설이지만 6.25의 참상을 가볍게 다룰 수 없습니다. 지금 몹시 머리가 아픕니다.

선생님이 장편을 쓰신다고 좋으면서도 저는 건강이 무척 걱정됩니다. 여기는 어제 아침에 벌써 된서리가 내리고 얼음이 꽤 얼었습니다. 그 허술한 방에서 무더운 여름을 지나게 하고 또 겨울을 보내도록 해서 참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사람같지 않게 살고 있는 내 자신이 한없이 미워집니다. 가보지 못해 늘 괴롭습니다.


정작 권정생을 괴롭힌 건 따로 있었다. 몽실이가 인민군 청년을 만나 통일이 되면 편지를 하자며 약속하던 장면, 그 장면은 삭제돼 버렸다. 제5공화국 시절이었다. 모든 원고는 검열됐고 두사람은 용공주의자로 몰렸다. 이오덕, 권정생 같은 북한을 지지하고 찬양하는 아동문학가가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 이런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이냐는 내용이 방송과 신문에 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몽실언니의 생명력은 그 어떤 폭력보다 강했다. 장편 동화 몽실언니는 개정판을 계속 내며 이제 한국 아동 문학의 고전이 됐다. 권정생의 동화에 대해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이들은 또 있었다. 그의 동화가 아이들에게 읽히기에는 너무 슬프고 어둡고 아프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분은 아이들이 정직한 삶의 이야기를 절대로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동심주의적으로 오해할 리 없다고 하셨다. 아이들도 역사 속에 실재했던 이야기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으며 어른들의 생각만으로 역사를 의도적으로 숨길 필요 없다.

제 동화가 어둡다고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만 저는 결코 제가 겪어 보지 못한 꿈같은 이야기는 쓸 수가 없습니다. 쓰려고 노력하지도 않겠습니다. 어쨌든 저는 앞으로도 슬픈 동화만 쓰겠습니다. 눈물이 없다면 이 세상 살아갈 가치가 없습니다. 산다는 것은 눈물 투성입니다. 인간은 한 순간도 죄짓지 않고는 살 수 없는데 어떻게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겠습니까. 결국 울 수밖에 없습니다. 울 수도 없다면 죽어야지요.


이오덕이 평생을 강조해 온 삶의 글을 바로 그런 것이었다. 이오덕은 묵묵히 권정생의 글을 조금이라도 더 발표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주말마다 서울을 오가는 것도 여전했다.
저 지금 상경하는 길에 우체국에 잠시 들렀습니다. 서울 가면 다시 선생님 동화집 내도록 해놓고 오겠습니다. 지금 그것때문에 가는 길입니다.


이오덕은 아이들을 믿었다. 아이들은 정직한 글을 알아볼 것이고 이오덕은 그것을 읽히고 싶어했다.

거기 일직 교회는 햇볕이 앉을 곳도 없는데 얼마나 춥습니까? 추위가 닥쳐 왔는데 어떻게 지내실지 걱정입니다. 걱정만 한다고 하니 가보지도 않으니 저같은 사람은 아무 쓸데도 없습니다. 선생님의 건강이 더
보리

보리 2009-11-19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고 출판의 빈 고리를 메우자. 수익이 나면 다시 책과 교육에 되돌리자. 보리출판사의 출판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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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6일(목)~29(일)까지 있을 서울국제유아교육전 참가를 위해 보리 출판사도 열심히 준비중입니다.

제 21회 서울국제유아교육전 안내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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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열리는 어린이 책 행사 중에 파주 어린이 책잔치와 서울국제유아교육전들이 큰 행사입니다. 그 외에도 서울북페스티벌, 파주 가을 책잔치등 많은 행사들이 있고, 모든 행사들이 주말을 끼고 열리기 때문에 영업 살림꾼들은 주말도 없이 일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큰 규모의 행사는 무척 많은 분들이 오시기 때문에 더더욱 힘들 수 밖에 없고요.

누가 어느 날에 나가서 일하느냐를 정하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고, 어떻게 가판을 운영하느냐를 정하고 준비하는 일도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일이 힘든 것 외에도 출판사에겐 또 다른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이런 행사들은 출판사와 독자(고객)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입니다. 출판사는 책을 만드는 곳일뿐 직접 판매를 하진 않으니까요.(간혹 출판사에서 책을 사면 더 싸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궁금하셔서 전화 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출판사에선 책을 판매하진 않습니다.^^ ) 이렇게 출판사가 직접 참여하는 행사에는 편집 살림꾼, 영업 살림꾼, 홍보 살림꾼, 저와 같은 누리 살림꾼, 관리 살림꾼들이 모두 나가게 되니 저희들은 독자(고객)분들의 책에 대한 생각을 직접 들을 수 있고, 독자(고객)분들은 책을 만드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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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파주 가을 책잔치 보리 가판

행사를 통해 출판사와 독자(고객)의 만남뿐 아니라 책을 싸게 살 수 있다는 좋은 점도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책행사는 책을 싸게 많이 사고 팔 수 있는 행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출판사들은 어떻게 하면 책에 대한 살아있는 이야기를 들려 드릴까 하는 고민을 할 새도 없이 이 책은 얼마인데 할인율이 어떻게 되니 할인가는 얼마다를 외우고, 행사를 통해 얼마의 판매 달성을 이룰 것인가를 놓고 전쟁을 하게 되고, 독자(고객)분들도 어느 출판사에서 책을 싸게 파는지를 살피기에도 너무나 바쁩니다.

출판사 내부에서도 책을 판매하는 행사이니 영업부의 일이다라는 편집부의 생각과 책을 만드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위한 행사이니 편집부도 함께 나서야 한다라는 영업부의 생각이 충돌하기도 하죠.

해외에서는 책판매는 하지 않고 책에 대한 소개와 이야기만으로 진행되는 행사들도 많이 열린다고 하는데 아직 우리나라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행사가 누구의 잘못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책을 싸게 살 수 있는 기쁨도 중요하고, 또 출판사와 독자들의 훈훈한 만남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니까요.

보리는 어떻게 준비를 하고 있을까요?
우선 행사 준비 담당자가 행사에 가져나갈 책 목록을 뽑아서 행사에 나갈 살림꾼들에게 미리 알려줍니다. 그러면 행사에 나갈 살림꾼들은 책을 미리 살피고 읽어 봐야겠죠.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 나온 책이라고 해도 저처럼 신입사원인 경우엔 읽지 못한 책이 많으니까요. 그리고... 또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담당자분 인터뷰를 해야겠는걸요.^^

책 할인 행사도 물론 합니다. 구간 30%, 신간 20% 까지요. 50% 할인하는 곳도 많고 1,000원 행사하는 곳도 많은데 왜 보리는 겨우 20~30%만 할인하냐고 물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책을 싸게 파는 행사로 준비하기보다 좋은 책을 소개해드리는 행사로 준비해 가고 싶습니다. ^^




세밀화로 그린 보리 아기 그림책
보리

보리 2009-11-17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고 출판의 빈 고리를 메우자. 수익이 나면 다시 책과 교육에 되돌리자. 보리출판사의 출판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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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는 글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을 받아 자연 만물이 생명의 결실을 맺는 계절입니다.
이번 추계학술대회에서는 첫 번째 '공간', 두 번째 '건강'에 이어, 《한국 유아교육, 행복 찾기 시리즈》세 번째 이야기 ‘한국 유아교육과정, 아이와 교사를 행복하게 하는가’ 라는 주제로 2007년 개정 유치원 교육과정에서 명시한 생태론적 세계관의 의미와 소중한 가치들이 유아교육 현장에서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진단과 더불어현 유아교육과정이 새롭게 거듭나기 위하여 근본적인 성찰과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합니다.
교육과정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유아교육과정이 아이와 교사의 행복을 이끌어주며 생명살림과 돌봄의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함께 하셔서 여러분의 지혜를 한 데 모아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 11월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회장 임재택

2009년도 추계학술대회 한국 유아교육의 행복 찾기 시리즈 Ⅲ : 교육과정

· 일시 : 2009년 11월 21일(토) 09:00-18:00
· 장소 : 동국대학교 본관 중강당(3층)
· 주최 :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부산대학교 유아교육학과 BK21 사업팀
· 후원 : 서남재단, 도서출판 공동체, 도서출판 양서원, (주)도서출판 보리, (사)생태유아공동체, 수도권생 
태유아공동체, 광주생태유아공동체, 대구생태유아공동체, 경북생태유아공동체, 제주생태보육협의회, 대전충남태유아공동체, 전북생태유아공동체
· 문의 : TEL. 051-510-1586 FAX. 051-516-0486
· 전자우편 : [email protected], http://www.ecoece.or.kr

발표 주제

 · 대주제 : 한국 유아교육과정, 아이와 교사를 행복하게 하는가?

 · 기조발제1 : 일본 유아교육과정,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발표 - 하마구치 준코(일본 오차노미즈 여자대 교수)
                        통역 - 김윤정(일본 오차노미즈 여자대 박사과정)

 · 기조발제2 : 생태론적 세계관, 2007년 개정 유치원 교육과정에서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발표 - 이부미(경기대 교수)

 · 주제발표1 일과운영 : 분절 ․ 통제된 일과, 자유 ․ 여유가 있는 일과
                       발표 - 서영희(동부산대 교수)

 · 주제발표2 교육활동 : 교사가 끌고 가는 수업, 아이가 풀어가는 생활
                        발표 - 김은주(부산대 교수)

 · 주제발표3 환경구성 : 예쁘게 꾸며진 학습환경, 살면서 배우는 생활공간
                        발표 - 윤선영(건양대 교수),  서은총(건양대부속어린이집 원장)

 · 주제발표4 행사운영 : 보여주고 알리는 행사, 더불어 자라고 즐기는 잔치
                        발표 - 하정연(부산대부설어린이집 원장)

 · 종합토론 : 한국 유아교육과정, 아이와 교사를 행복하게 하는가?
                        좌장 - 문미옥(서울여대 교수)
                        토론자 - 권은주(동국대 교수)
                        주제발표자 : 이부미, 서영희, 김은주, 하정연, 윤선영, 서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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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보리 2009-11-17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고 출판의 빈 고리를 메우자. 수익이 나면 다시 책과 교육에 되돌리자. 보리출판사의 출판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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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공식 블로그를 준비하며 어디에 블로그를 열어야 할 지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공식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는 만큼 설치형 보다는 가입형 블로그가 적당하다는 생각을 하였고,
가입형 중에선 몇가지 서비스를 놓고 이리저리 재보았습니다.
어떤 서비스에서 어떻게 운영하는 것이 보리 정신에 맞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블로그 운영하는데 무슨 보리 정신이 있겠냐 싶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세상이 변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만 글을 쓰면 그들의 글만 읽혀 세상에 그들의 생각만이 있는 것처럼 되어 버리니까요. 누구나 글을 써서 모두의 생각이 읽히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수평적인 사회가 만들어 질 수 있으니까요.

1.jpg
그림 출처 : http://www.enablewebseo.com/web20-gov20-integration.html

블로그는 누구나 글을 쓰고 읽힐 수 있는 도구입니다. 그래서 블로그를 1인 미디어라고 하죠. 실제로 블로그를 통해 그동안 세상에 나오지 못했던 많은 목소리들을 들을 수 있게 되었고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힘없고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이 글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누구의 글이나 읽힐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권력이 개입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웹에서의 권력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웹에서의 권력은 검색에 있습니다. 누구나 정보를 찾기 위해 웹에 들어오고, 검색창을 통해 정보를 찾아 떠납니다. 검색창은 곧 권력입니다. 검색창을 통해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으니까요.

권력은 바르게 쓰여져야 합니다. 웹에서 권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업에서 성공한 일개 기업들일 뿐인데 이런 공공의식을 강요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도 들 수 밖에 없지만, 웹 세상은 공공재입니다. 사회적 차원에서 공적 자금을 들여 기반 시설을 구축하고 발전시켜온 세상이니까요. 책이 공공재이듯 웹 세상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책 만드는 사람들이 바른 책을 만들어야 하듯 웹에서의 권력도 마땅히 바르게 쓰여져야 합니다. 웹에서의 권력은 바르게 사용되고 있을까요? 누구나 글을 쓰고 읽힐 수 있는 세상일까요?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공평한 웹"은 보리의 정신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티스토리 또한 완벽하진 않을 것입니다. 블로그의 장점은 또 언제든 짐싸서 이사갈 수 있다는 것이니까요. 티스토리에서 열심히 터를 잡고 더 좋은 세상이 나타나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리로 가야겠죠.

큰 돈을 벌기 위해 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양식이 되어준 보리를 닮은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보리 출판사의 블로그는 쉽게 많은 방문객을 확보해서 성공적인 홍보 활동을 하기 보다는 바른 웹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작은 블로그 하나 열면서 너무 편협하고 거창한 생각일까요? ^^

2009년 11월 17일 보리 누리 살림꾼의 작은 생각이었습니다.





보리

보리 2009-11-17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고 출판의 빈 고리를 메우자. 수익이 나면 다시 책과 교육에 되돌리자. 보리출판사의 출판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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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전북 부안군 변산면 운산리 12-3
063)584-0584
[email protected]

변산1.jpg


안녕하세요.
  농부가 콩 세알을 심는 까닭이 새가 한 알, 벌레가 한 알, 농부가 한 알 갖기 위해서라고 했던가요? 허나 멧돼지 앞에 고구마는 이런 법칙이 통하지 않나 봅니다. 올해 산비탈에 200평 남짓 심어서 애써 가꾼 고구마를 멧돼지 가족이 몰려와 한 알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먹어버렸으니 말입니다. 봄부터 고구마 모종 기르느라 애쓴거 하며, 고구마 밭 풀 매주며 들인 정성을 생각하면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습니다.
  면사무소에 멧돼지 피해 신고를 했더니 면직원이 멧돼지 잡는 포수를 소개시켜 주더군요. 포수가 와서 하는 말이 멧돼지가 이곳 뿐만 아니라 다른 마을에도 자주 나타나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랍니다. 아니나 다를까 공동체에 매일 같이 오시는 형님도 집 앞에 심어 놓은 고구마를 하나도 안 남기고 모두 파먹었다고 합니다. 몇 년 전에도 멧돼지가 산에서 내려와 고구마를 먹어 치우기는 했지만 올해처럼 한 알도 안 남기고 다 먹어치우지는 않았는데 올해는 멧돼지 숫자가 엄청 늘었는지 여기저기 멧돼지가 다녀간 흔적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논둑까지 다 파헤쳐 놓았으니까요. 산 가까운 밭에 고구마 심기는 이제 힘들어졌습니다. 콩도 마찬가지입니다. 콩이 한창 익을 때가 되면 고라니가 내려와 잎사귀를 전부 따먹어 버려서 이래저래 걱정입니다.
  멧돼지와 고라니에게 입은 피해를 생각하면 화가 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것도 인간이 그동안 저지른 죄의 댓가를 받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제 산에는 멧돼지와 고라니의 천적이 살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놈들은 해가 거듭될 수록 식구들이 늘어나는 것이지요. 또한 산 이곳저곳이 마구 파헤쳐져 멧돼지가 산에서 먹이를 구하기 힘드니까 사람이 사는 곳까지 먹이를 찾아 내려온다고 합니다. 자연의 먹이사슬 구조가 깨지면서 그 피해가 고스란히 사람들에게 돌아오고 있는 셈이지요. 애시당초 잘못은 사람들에게 있으니 멧돼지, 고라니만을 탓할 수는 없겠지요.
  가끔씩 끔찍한 상상을 해봅니다. 사람들이 자기들만 편하게 살겠다고 산이고, 강이고 마구마구 파헤치니까 그곳에 기대어 살아가던 동물, 식물들이 우리도 더 이상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는 못살겠다며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는 겁니다. 농작물을 마구 파헤치고 사람 사는 마을을 떼지어 공격하고, 동물들의 습격에 사람들은 손 쓸 새도 없이 당하기만 하는 상상.
  날이 갈 수록 심각해져가는 환경 오염과 지구 온난화를 보면 언제까지 사람들이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우리가 아무런 생각 없이 누리는 편리함 속에서 우리들 스스로는 알게 모르게 빠져나올 수 없는 절망의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요. 오늘 내 몸이 힘들더라도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삶을 선택할 용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모두들 건강하십시오.
2009. 11.1 김희정

모 둠 일 기
첫 날  9월 1일, 새날

공동체에 왔다.
절필질퍽한 땅이 새로웠다.
지금은 불편하지만 언젠간
새파란 잔디가 되어나겠지.

당근이지  9월 3일, 회장
오늘은 당근을 심었다. 저기 아래 입구 밭에다가 당근을 심고 멀칭을 했다. 당근이라... 2학기 들어 우리 학생들의 최초 작물이다. 이 당근을 심는다는 것은 드디어 우리 학생들의 노력과 공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찬 출발이랄까? 당근을 팔아 번 공금은 우리가 쓰는 것이다. 당근 심기를 통해 학생들이 농사에 조금 더 많은 관심을 보이길 바란다. 책임감을 가지는 것, 농사를 깨닫는 것, 돈은 당근이고, 그렇다. 우리는 당금을 심었다. 얼른 먹고 싶다.

벽돌  9월 어느 날, 진기
오늘 오후에 학생들끼리 벽돌을 찍었다. 원래 나와 명기 형은 오늘 집에 가야하는데 내일 아침에 가라고 해서 오후에는 벽돌을 찍었다. 벽돌 찍는 사람들이 "너 왜 안 갔어?"라고 물어봐서 나는 내일 아침에 간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결국 명기 형과 나도 벽돌 찍기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벽돌을 찍을 때 처음에는 혜미가 기계를 넣는 일, 새날이 형은 기계를 했다. 솔이 형과 온이 형은 벽돌을 날랐다. 70장을 찍고 음악 수업 시간이 되어서 끝냈다. 그런데 수업을 안했다.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식사당번  10월 28일, 웅
오늘 새벽에 아루 누나가 깨워서 식사 당번을 하러 갔다. 가서 많은 일을 했다. 그리구! 다음에 안 바쁠 때는 징만 치게 해준다고 약속했다. 와~ 기분 겁나 좋았다.

홍시   10월 28일, 애요
갑자기 오늘 태성이 형이 와서 기숙사에서 잔다고 햇다. 서울 가기 전 1주일 정도 있는댔다. 처음에 와서 먹고 싶다길래 온이랑 나랑 이장님 댁에 가서 홍시를 찾아 헤맸다. 홍시를 먹었다. 역시 홍시는 대봉감이다. 요즘은 날씨가 좋아서 감이 빨리 빨리 익는 철이다. 기분이 겁나게 좋다. 뭐 겨울엔 감을 왕창 먹겠지만 가끔씩 지금 이맘 때 먹는게 가장 좋은 것 같다. 

無전여행   09.9.21~28
  가을 볕이 한창 따갑던 지난 9월, 공동체 학교 중,고등부가 8일 동안 제주도로 무전여행을 다녀왔습니다. 3팀으로 나누어서 돈 한 푼 없이 알아서(걷거나 차를 얻어타거나 자전거로 다니면서, 먹을 것과 잘자리를 구걸해가며) 완도 항에 도착, 배를 타고 제주도로 건너가 다같이 자전거로 제주도를 한 바퀴 돌면서 다시 얻어서 먹고, 자고...
  남들 다 잘 먹고 잘 자가며 관광한다는 제주도에서 좀처럼 겪기 힘든 고생을 했습니다. 가출판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아침부터 재수 없다는 식당 아주머니의 타박에 풀이 죽기도 하고, 빈 건물 시멘트 바닥에 박스 깔고 신문지 덮고 자면서 밤새 모기와 사투를 벌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아무 대가 없이 먹을 것과 잘 곳을 마련해 주시며 "나한테 고마워하지 말고 너희들도 다음에 먹을 것 없고 잘 곳 없는 사람들 도우면 되지." 하시는 마음씨 따뜻한 분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기억에 오래 남을 여행이었습니다.

  무전여행 시작이다. 첫팀은 온이, 명기 형, 나 이렇게 셋이서 다녔다. 완도까지 갈 때는 밥도 잘 먹고 간식도 잘 먹고 잠도 잘 자면서 다녔지만 다른팀과 만나서 제주도를 가자마자 시련은 닥쳐왔다. 자전거로 제주도를 도는데 휴... 장난 아니다. 하지만 완주증을 받았을 때는 정말 좋았다. 여행을 하며 겪은 경험들 모두가 새로웠고 정말 즐겁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던 아주 복잡한 여행이었다.

  이번 여행은 자전거 팀으로 갔다. 우린 돈이 없다는 것도 그렇고 일단 영재 형이 불안했다. 그래도 영재 형이 제일 큰데 우리팀 밥은 잘 먹여 줄지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자전거 타면서 일단은 뭘 계속 먹고 싶었는데 막상 구걸해 보면 밥을 주시면서 많이 먹고 떠나라고 말씀하셨다. 정말이지 밥을 먹여준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영암에 갔을 때 길 갈 때마다 무화과 파는 아줌마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 중 한 가게를 잡아 먹고 싶은 눈빛으로 볼 때 갑자기 선뜻 무화과를 주신 영암 아줌마가 정말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그때 1초에 1개씩은 족히 먹고 엄청난 기우이 났다. 정말 고마운 분이다. 제주도에서는 준희 아저씨를 만났는데 정말 반가웠다. 준희 아저씨는 우리를 위해 회를 사주셨다. 서귀포시에서는 오성근 아저씨가 계셨는데 그 분은 갈비를 사주셔서 정말 행복했다.
  돈이 없어도 잘 먹고 잘 자고 일주일을 보낸 것 같다. 기억에 남는 건 모두 먹을 것 뿐인 듯 싶다. 그러고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녔으니까 항상 배고픈 심정이었으니까 말이다...
  내년에 무전여행을 갈 때는 또 자전거 팀으로 갈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내년 무전여행을 해도 변산공동체라면 걱정 없이 잘 먹을 수 있겠구나 생이 든다.

  여행 때는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었다. 너무 배고프고 힘들었고 밥 구걸하는 짓두 챙피햇다. 제주도에서 사이코 아저씨를 만나서 재수 없기도 했다. 마지막 날에 하던 뽑기는 재미있었다. 영재 형이랑 새날이 형이랑 자전거 시합하던 것도 재미있고 통쾌했다. 자전거 여행할 때 김치에 밥만 먹은 것도 서러웠고 한편으론 맛있었다. 비오는 거리에서 찜질방 찾아다니는 것도 괴롭고 힘들었다. 

  작년에도 무전여행을 갔지만 작년보다 재밌고 무언가 낚는 여행이었다. 처음에는 작년에도 했지만 어색한 밥 얻어먹기 하고나서 그 다음부턴 메뉴를 고르는 당당한(?) 무전여행이었다. 완도까지 가는 동안은 되게 편하게 갔고, 배불렀다. 그리고 제주도에 갔다. 볼 것은 많았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불가능한 것을 해내느라 구경이란 좀처럼 하지 못했다. 나름 재밌었다. 돌아보면 힘든 때보다 재미있던 게 더 많다. 내년에는 좀 더 색다른 여행을 했으면 좋겠다. 

  제주도에서 참 많은 일도 있었다. 구걸하면서 먹을 걸 먹고 잠잘 때도 겨우겨우 얻어서 잠자리를 구했다. 참 거지가 된 것 같다. 그리고 어떤 술주정 아저씨를 만났는데 우리보고 양아치라고 부르셨다. 그 아저씨가 오리고기를 사주셧는데 갑자기 의심을 하면서 우리들보고 '너희들 뭐하는 애들이냐'고 물어 보셨다. 그래서 우린 대안학교에서 수학여행 비슷한 걸로 무전여행을 왔다고 했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계속 의심을 하면서 꼬치꼬치 물어 보신다. 그 땐 정말 열 받았다. 하지만 인내심으로 참았다. 

  우리는 9월 21날에 출발을 하였다. 21날에 우리는 순조롭게 목포에 도착했다. 목포에서 점심을 먹고 진도로 향하는데 좋은 아저씨를 만나 붕어빵도 먹고 평화광장도 갔었다. 진도로 가려고 옥암쪽에 위치한 영산강 하구둑으로 갔다. 히치를 하는데 겁나 힘들었다.ㅠ_ㅠ 하지만 기아자동차에서 일하시는 아저씨가 차도 태워주시고 밥도 제유볶음을 사주셨다. 그리고 제주도에서의 나는 인기 절정(?)이었다. ㅋㅋㅋ 어떤 아저씨가 이쁘다고 물도 사주시고, 어떤 느끼하게 생긴 아저씨는 시간있냐고 물어 보기도 했다. 제주도 있었던 날들은 그냥 다 힘들었따. ㅠ_ㅠ 공동체가 천국이다. ㅎㅎ 

  먹어도 먹어도 배고팠고 자도 자도 피곤했지만 사람들 인심이 좋아서 잘 먹고 잘 잤다. 집에 가고 싶었다. 

  경찰차를 처음 타봤는데 형들이 말한 것처럼 정말 뒷좌석엔 손잡이가 없었다. 여행할 때 경찰차도 타보고 정말 재미있었던 것 같다. 역시 내년에도 여행은 갈 것이다. 아! 자전거는 안탈거다. 

無일푼의 길
                                  이명기

길은 멀고 험난했다

수 없던 비굴함과 고마움의 교차
그로인해 터질듯 미쳐버린 내마음
나는 어지러웠다

수없이 비를 맞으며 달린다.
無일푼으로 길을 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

그래도 난 無로 갈려했다

그러나
내 마음의 복잡함으로
미쳐버린 나를 자제하지 못한
내 17년 인생은 무엇인가

인생이 無에서 無로 돌아간다지만

난 모르겠다
무엇이 無로 가는 여정인가


변산공동체학교

가을걷이 축제

2009년 11월 14일 토요일 오후 3시
공동체학교 강당



보리

보리 2009-11-16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고 출판의 빈 고리를 메우자. 수익이 나면 다시 책과 교육에 되돌리자. 보리출판사의 출판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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