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출판사 블로그

 

 

나쁜 아저씨들

 

성래운

 

보사부(전 보건복지부)의 허가를 받아 사람이 먹을 빵을 만들어 팔아 왔고, 문교부(전 교육부)의 보조금까지 받아 가며 학교 아이들이 먹을 빵을 만들어, 그나마 문교부 관할 아래 있는 학교와 손잡고 어린이 모두한테 팔아 온 빵이었다. 유해 식품이야 그 전에도 있었지만, 거리의 가게에서 판 빵이었다면 안 사고 안 먹으면 될 일이었다. 학교 교실에서, 선생님 앞에서 먹었던 빵이었다.

 

“쌀밥, 보리밥만 먹는 식생활은 좋지 않다. 외국에서 들여온 밀로 만든 빵도 먹어야 몸에 좋다. 그러니 몹시 가난한 어린이 말고는 가져와야 한다. 모두 감사한 마음으로 먹자.”
이러시는 선생님이신데 안 사고 안 먹으면 도리어 꾸지람을 들을 일이었다.

 

그런데 그 빵을 먹고 수많은 어린 학생들이 식중독을 앓았다. 급기야는 죽기까지 했다.
오늘 그 아이의 교실에서는 살아난 아이들끼리 국화꽃 송이를 바치며 죽은 동무를 추도하고 있었다.

 

“나쁜 아저씨들 때문에 너는 죽었다.”
같은 반 동무의 말이었다. 담임선생도 가슴이 아팠겠지.
“같은 어른들의 한 사람으로서 너에게 깊이깊이 사죄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다짐한다.”

 

죽은 그 아이를 놓고 다시 부검해서 그 원인을 규명한다는 둥, 약방에서 사다 먹은 약값까지 교육 당국에서 물어 준다는 둥, 아무개는 마땅히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둥, 강제로 빵을 사 먹게 한 문교부의 지시를 철회하라는 둥, 아니 그 지시를 철회하는 건 원래 교육감의 재량에 속하는 일이었다는 둥, 아이들 앞에서 보이는 어른들 추태는 뉴스 때마다 꼬리를 물고 보도되고 있다.

 

추한 어른들, 아니 추한 한국인들. 우리는 언제부터 이 지경이 되었나?
조선왕조 시대에 그저 가난하기만 했던 우리 조상들이었건만, 일제강점기에, 위정자들로부터 벌레처럼 업신여김을 받았던 우리 선배들이었건만, 이웃을, 동족을, 아니 사람을 아낄 줄은 알았는데. 가난을 벗어나 부자가 된대도, 남들 위에 서서 권세를 누리게 된대도, 사람을, 동족을 해치는 일만은 안 했었는데. 
한마디로 하늘을 두려워하는 인간 양심만은 움켜쥔 채 살아왔는데. 

 

우리 한국인이 이토록 추해진 것은 분명 우리 대의 일이다. 해방 뒤의 일이다. 일제에게 동족을 팔아 제 권속의 권세와 부귀를 누렸던 추악한 사람들인데, 우리 정부의 철퇴는커녕, 고관 대직에 기용까지 되고서부터이다. 자유당과 그 정부를 떠받들기만 하면 어제까지의 민족 반역자도 일제 식민 아래서 부귀와 영화를 계속 확대해 가고 있음을 보고 나서부터이다. 

 

이때부터 너도 나도 부귀영화에 눈이 먼 것이었다. 부귀를 얻기 위해서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 동족도 사람도 마구 쓰러뜨렸다. 한마디로 민족정기가 없는 민족이 되고서부터다. 초등학교 아이들의 집단 식중독 사건은 결코 우발이 아니다. 

 

나라 안에 어디를 가도 득실거리는 나쁜 아저씨와 아줌마들인 것이다. 약하면 사람까지도, 저 부자 되고 권세 잡는 데 이용하려는 무리들이 우리 사회에 판을 치고 있는 한, 이제까지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가난하고 약한 사람은 생존조차 위협받게 될 것이다.

 

양심껏 이웃을, 동족을, 아니 사람들을 섬겨야 부자가 될 수 있는 세상, 사회에 정의를 세워야 권세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아쉽다. 한마디로, 바른 기운이 충만된 민족이 되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을 틀어야 하지 않을까? 

 

민족을 일제에 팔아넘기며, 이웃 사람을 해쳐 가며 쌓은 부는 이제라도 사회에 돌려야 한다. 가난한 농부도, 광부도, 직공도, 약한 아이들도 모두가 사람인 까닭으로, 사회와 나라의 적극적인 보호와 육성 아래 부강해진 이들의 제물이 되는 일만은 근절되어야 한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이 아니라 약육강조(弱肉强調)의 새 세상 만들기를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만 남의 아들딸을 해치면서 제 부귀만 누리려는 나쁜 아저씨와 아줌마들이 이 땅에서 없어지는 것이다.

 

* 《제자여 사랑하는 제자여, 문학세계사, 1984》에 실린 글을 담았습니다.

 

 

※ 개똥이네 집 103호 (2014년 6월) '성래운의 교육 걱정'에 실린 글을 옮깁니다. 

 

 

편집 살림꾼 누리짱

편집 살림꾼 누리짱 2014-05-27

보리출판사가 만든 그림책 브랜드 개똥이에서 세상의 모든 그림책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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