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출판사 블로그

 
 나이가 많이 든 듯싶은 큰 고목나무 아래에 가금 팻말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팻말 안에는 그 나무의 나이가 얼마쯤이며, 무슨 나무며, 언제부터 보호해 왔는지가 적혀 있고는 한다. 사람이 나무를 보호한다? 언제부터 사람이 나무를 보호해 왔지? 썩은 밑둥치에 시멘트를 우겨 넣어 더 썩지 않게 만드는 게 그 '보호'의 흔적인가? 어린 시절 내가 자란 마을 들머리에는 '당산나무'가 서 있었다. 그 나무가 그 마을의 보호수였다. 마을 사람들이 그 나무를 보호해서 '보호수' 인 게 아니라 마을 사람과 마을 전체를 그 나무가 보호해 준다는 뜻해서 '보호수'였다.

  더 작은 게 더 큰 것을 보호할 수도 더러 있겠다. 그러나 그것이 자연 현상이나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바람이 우리를 보호해서 우리는 그 바람을 들숨으로 들이쉬고 날숨으로 내쉬어서 목숨을 이어 간다. 물이 우리를 보호해서 우리는 날마다 수시로 물을 마셔 우리 몸이 안팎으로 구석구석까지 물기에 젖어 살아간다. 우리 몸에서 물기가 사라지면 우리는 죽은 목숨이다. 불이 우리를 보호해서 우리는 모을 따뜻하게 하고 어둠 속에서 우리를 먹이로 노리는 짐승들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 땅이 우리를 보호해서 우리는 땅에 발붙이고 살고 땅에서 움 돋고 열매 맺는, 그리고 땅에 기대서 사는 온갖 생명체를 먹이로 삼아 살아간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마치 우리가 우리보다 훨씬 더 큰 물, 불, 바람, 땅을 보호하는 것처럼, 또 그래야 하는 것처럼 행세한다. 사실은 대책 없이 물과 공기를 더럽히고, 자원을 함부로 써서 자연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환경을 망치는 지각없는 사람들에 맞서서 자연의 자연스러운 상태를 지켜 낸다는 뜻이겠지. 그러니까 자연을 보호한다는 말은 더 작은 자연의 한 구성원인 사람이 더 큰 자연의 구성원들을 감싸고 지켜 준다는 뜻이 아니라, 조금 더 지각 있는 사람들과 지각없이 자연을 해치는 짓을 하는 사람들 사이의 싸움을 과장해서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도 된다.
  우리는 나이 들어 둥치가 썩어 가는 나무에 시멘트를 처바르거나, 죽어 가는 '정이품 소나무' 같은 것에 수액 주사를 놓아 목숨을 잇도록 하는 어리석은 짓을 해서는 안 된다. 모든 생명체에는 자기 치유의 능력이 있다. 자연 수명이 다한 나무가 아니라면 아무리 오래 산 나무라도 스스로 겁질에서 생살을 키워서 제 몸에 생긴 석은 구멍을 메워 낸다.
  적게 먹고, 적게 쓰고, 버리는 것 없이 알뜰하게 살림을 꾸리는 길이 자연을 보호(?)하는 길이고, 우리가 자연에게 보호받는 길이겠지. 안 그런가?
보리파비콘16_16.jpg







보리에서 펴내는 월간 어린이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의 부모님 책 <개똥이네 집> 11월호에 실린 '고무신 할배의 넋두리'
보리

보리 2009-10-29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고 출판의 빈 고리를 메우자. 수익이 나면 다시 책과 교육에 되돌리자. 보리출판사의 출판 정신입니다.

댓글을 남겨주세요

※ 로그인 후 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