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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영희 선생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이 나라 민주화에 가장 크게 공헌한 분을 딱 한 분만 들라면 리영희 선생님을 들겠습니다. 군사 독재 시절이었던 1970~80년대에 이른바 '운동권 학생'들은 리영희 선생님이 쓴 책을 책꽂이에 꽂아 놓았다는 것만으로도 쇠고랑을 차야 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미국도 리영희 선생님을 두려워해서 제 나라 정보원들을 시켜 리 선생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게 했다는군요.)

  선생님이 쓰신 글 가운데 '새는 좌우의 두 날개로 난다'라는 짧은 글이 있습니다. 새의 왼 날개(좌익)와 오른 날개(우익)에 빗대어 진보진영(좌익)과 보수진영(우익)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이 나라가 제대로 살아남을 수 있음을 일깨워 주는 글이었습니다. 그때는 오른 날개 맨 끝에 있는 깃털(극우세력)들이 몸통 행세를 하면서 새는 오른 날개 깃털 끝만으로도 날 수 있다고 박박 우기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깃털들이 보기에 리영희 선생님은 '미운 털'이었습니다.

  보수를 '지키자'는 쪽, 진보를 '바꾸자'는 쪽이라고 보면 '지키자'는 쪽이 몸통이 되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 삶터가 '버릴 것이 하나도 없고, 버림받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리고 이 세상이 '있을 것만 있고 없을 것이 없는' 지상천국이고 극락이라면, 우리는 이런 삶터, 이 좋은 세상을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 내야 합니다. 이런 세상이라면 저라도 앞장서서 "'깡보수' 만세! '극우세력' 만만세!"를 부르겠습니다. 하나라도 바뀌면 나쁜 세상이 되니까요. 이런 좋은 삶터, 세상을 끝까지 '지켜' 내야지요.

  그러나 버릴 것투성이고, 버림받은 사람들이 길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 '없을 것만 있고, 있을 것이 하나도 없는' 세상이라면 저는 "'급진' 만세! '극좌세력' 만만세!"를 부르겠습니다. 털끝만큼이라도 바꾸어 낼 수 있다면, 그만큼 세상은 좋아지니까요. '온통 다 바꾸자'는 게 꿈일 수 있겠지요.

  왼 날개와 오른 날개는 겨드랑이에서 몸통과 이어져 있습니다. 몸통은 극락도 무간지옥도 아닌 현실 세계에서 왼 날개 오른 날개 가운데 어느 한쪽이라도 없으면 살아남기 힘듭니다. 이 몸통이 누구냐고 물을 얼빠진 사람이 있나요? 사람만 떼 놓고 본다면 '민중' '인민' '시민' 들이고, 더 넓히면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임을 모르겠다고 도리질하는 당신은 누구신가요?

  리영희 선생님은 이 땅 이 나라 백성들이 살아남으려고 겨드랑이에서 키워 낸 두 날개 가운데 왼쪽에 몸을 실었습니다. 오른 날개가 너무 무거워서 몸뚱이가 균형을 잃어 곤두박질치고 있음을 누구보다 먼저 알고, 누구보다 더 잘 알았기에, 날개가 오른쪽으로 기울면 기울수록 더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위태로운 걸음을 옮기셔야 했습니다.

  무게 중심이 자꾸 오른 날개로 기우는 이때, 선생님 빈자리를 누가 메울 수 있을까요?

리영희 선생님, 대답해 주세요!

 

-윤구병, <개똥이네 집> 2011년 1월호

 

 

 

편집 살림꾼 지리소

편집 살림꾼 지리소 2011-06-15

古傳을 만들면서 苦戰을 면치 못하다가, 책 만드는 일에도 사는 일에도 고전하고 있는 困而知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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