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출판사 블로그

새벽 6시, 아이들이 일어날 시간이다. "일어나자." 이 한마디면 아이들은 군말 없이 일어나 식당으로 모여든다. 맨 꼴찌로 식당에 들어오는 아이는 아침 설거지 당번을 해야 한다. 식당에 들어와 눈 비비고 수다 좀 떨다가 자연스럽게 모두들 흩어진다. 밥 짓는 아이, 물 기르는 아이, 나무하러 가는 아이, 어제 저녁에 먹은 밥그릇을 씻으러 가는 아이...

7시 30분이 아침 식사 시간이다. 가마솥에서 퍼 온 뜨끈한 밥, 국, 김치 멸치볶음이나 공동체에서 가져온 반찬 한 가지 더해서 아침을 먹는다. 아침이지만 한 사람이 보통 세 그릇씩 먹는다. 아침을 먹고 나면 기타 치며 노래하는 아이도 있고, 수다를 떠는 아이도 있다. 그러다 8시 20분이 되면 삽, 괭이, 장화, 장갑을 챙겨 들고 집 짓는 곳으로 간다.

집 짓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밭에서 흙을 퍼다가 모래와 지푸라기 썬 것을 넣고 물을 부어 발로 밟아서 진흙을 만든다. 진흙이 다 만들어지면 흙을 뭉쳐 벽을 쌓는다. 모두들 처음 해 보는 일이나 서툴지만 어느새 벽이 제법 올라갔다. 일하는 내내 아이들은 노래 부르고, 무슨 할 이야기들이 그리 많은지 계속 떠들어 대서 일터가 조용할 날이 없다. 나이 사십이 넘은 나는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알지 못한다. 장기하 노래는 조금 알겠는데 드렁큰타이거처럼 랩으로 부르는 노래는 하나도 모른다. 아이들은 그 많은 노래들을 어떻게 다 외우고 그렇게 빨리 랩을 하는지 듣고 있으면 신기하다.

10시가 되면 오전 참이 나온다. 일하면서 아이들은 시계를 가진 아이한테 계속해서 몇 시냐고 물어본다. 참 시간이 되었는지 궁금한 게다. 오전 참을 고구마를 찌기도 하고 가끔 라면을 끓이기도 한다. 처음에는 한 여학생이 식사 당번을 했는데 밥 짓기에 몇 번 실패하고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잘렸다. 그 다음에는 요리 학원을 한 달 다녔다는 남학생이 식사 당번을 맡아서 참으로 고구마를 쪄 왔는데 반은 익고 반은 익지 않아 아이들 원성을 들었고, 그 아이 또한 잘렸다. 자기는 양식 요리 학원에 다녔다나. 그래서 결국 식사 당번은 요리 경험이 많은 내가 맡게 되었다.

오전 참을 먹고 나면 진흙 만드는 사람과 벽 쌓는 사람이 일을 바꾸어서 한다. 집 짓기에서 가장 힘든 게 진흙 만드는 일이다. 흙이 장화에 들러붙어 자칫하면 넘어지기 쉽고, 장화가 진흙 속에서 잘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1시가 되면 점심밥을 먹으러 간다. 점심도 아침과 다를 게 없다. 시간을 아끼려고 점심 때 먹을 밥을 아침에 미리 해 놓기 때문이다. 점심도 보통 두세 그릇씩 먹는다. 다섯 그릇까지 먹는 아이도 있다. 점심 먹고 나면 30분쯤 쉰다. 쉬는 시간에 잠깐 잠을 자는 아이도 있고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아이도 있고 책을 보는 아이도 있다.

2시가 되면 다시 일터로 간다. 오후에는 일이 조금 더디다. 손발을 놀리는 시간보다 입을 놀리는 시간이 많다. 그러다가 내가 잔소리하면 바짝 힘을 내다가 다시 떠들고 몇 시나 됐냐고 계속해서 물어본다. 오후 참은 4시다. 오후 참이라고 해 봐야 별 거 없다. 공동체에서 가져온 과일이 있으면 한 조각씩 먹거나 어떤 때는 거르기도 한다. 처음에는 김치전도 만들어 먹었는데 이제는 귀찮아서 아예 안 먹는다.

오후 일은 6시에 끝난다. 일을 마치면 개울에서 몸을 씻고 빨래도 한다. 개울에는 아이들 양말, 옷가지들이 물속에 담겨 있다. 흐르는 물에 때가 빠지라고 아이들이 돌로 눌러 놓은 것이다. 사나흘씩 물속에 잠겨 있는 팬티를 보기도 했다. 6시 30분에는 저녁을 먹는다. 저녁은 생선을 굽기도 하지만 반찬은 아침과 점심에 먹은 것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가끔 반찬 한 가지가 더 나오면 아이들이 입을 모아 "우와, 오늘은 반찬이 억수로 화려하네!" 하고 기뻐서 소리를 지른다. 그럴 땐 꼭 바보들 같다.

아이들은 밥을 참 많이 먹는다. 여덟 명이 일주일에 쌀 20kg을 먹는다. 내가 우스갯소리로 니들은 밥만 많이 먹고 일은 너무 조금 한다고 말하면 아이들도 "맞다, 우리는 먹는 밥을 입으로 떠들고 똥으로 다 싼다."며 웃는다. 보통 9시면 자러 들어간다. 잠은 텐트 속에서 잔다. 저녁 먹고 7시 30분에 잠자러 가는 아이도 있다. 세상에나, 놀랄 일이다. 하기야 8시 조금 넘으면 밖이 어두컴컴하고 할 일도 없다. 손전등 불빛이 밝지 않으니 책 읽기도 힘들다.

여기까지 읽으면 눈치가 빠른 사람은 어떤 이야기인지 얼추 감을 잡았을 것이다. 덧붙여 설명을 하자면 변산공동체학교 고등부 아이들 산속 생활 이야기다.

변산공동체학교가 가진 땅 가운데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자동차며 기계도 들어가지 못하는 땅이 있다. 지름박골이란 골짜기다. 몇 백 년은 되었을 팽나무 할머니가 계시고 사람 손을 타지 않아 계곡이 참 깨끗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여기서 남자아이 여섯 명과 여자아이 한 명 그리고 나까지 여덟 명이 3월 중순부터 텐트 치고 잠자면서, 가마솥에 밥해 먹으며 손으로 쓸 수 있는 연장만 가지고 열 평 남짓한 집을 짓고 있다. 여자아이는 사정상 새벽에 일터로 왔다가 저녁을 먹고 다시 공동체로 내려간다.

집 짓는 시간은 두 달 남짓으로 생각하고 있다. 틈틈이 밭농사도 함께 짓는다. 처음에 고등부 아이들한테 올해는 산속에서 먹고 자면서 두 달 동안 집을 짓는 게 수업이라고 하니까 한숨을 푹푹 쉬는 아이, 재미있겠다고 좋아하는 아이... 반응은 저마다 달랐지만 다들 걱정되는 눈치였다. 산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막막했던가 보다. 지금은 모두들 산속 생활에 완전히 적응해서 즐겁고 행복한 얼굴들이다.

울산에서 온 한 남학생 어머니가 아들을 보러 오셨다. 아이들 모습을 보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산속에서 집 짓는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상상했던 것보다 더, 전라도 말로 거시기했나 보다. 내가 넌지시 "아이들 모습이 어떠세요?"하고 물어보니까 "흙 속에서 뒹굴다가 방금 나온 고구마, 감자 같다."고 말씀하신다. 아이들 얼굴이 생기가 넘쳐 보이는 게 참 좋다는 말이다. 집에 있을 때는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었는데 지게 지고 나무해 오고, 불 때서 밥해 먹는 모습이 신기하다고. 가실 때 아이들 먹으라고 삼겹살을 많이 사 주셨는데 한 끼에 다 먹어 치웠다. 우리는 절대 남기는 법이 없다.

공동체학교 아이들한테는 제도권 학교나 대안학교에서 가르치는 수학, 영어 같은 게 정규 과목이 아니다. 정말 배우고 싶어 하는 아이들만 따로 모아 공부를 한다. 대신 몸으로 배우는 수업이 훨씬 많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걱정하거나 마음 졸이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생활이 무척 즐겁고 행복하단다.

몸이 고되고, 생활은 불편하지만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 나는 거꾸로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날마다 젋어지고 있다. 집을 다 짓고 마을로 내려갔을 때 우리는 산속 생활을 그리워하며 텐트 들고 다시 산속으로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글쓴 이 | 김희정
1969년에 전남 영광군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고 충북대학교 철학과에서 윤구병이라는 사람을 잘못 만나 1996년에 변산공동체에 들어가게 되었다. 윤구병 선생님이 자유인을 선언하면서 얼떨결에 변산공동체학교 교장을 맡게 된다.



보리에서 펴내는 부모와 어른을 위한 책 <개똥이네 집> 2010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보리

보리 2010-11-05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고 출판의 빈 고리를 메우자. 수익이 나면 다시 책과 교육에 되돌리자. 보리출판사의 출판 정신입니다.

  • 문봄

    2019-11-09 23:27

    얼떨결에^^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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