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출판사 블로그

지난 11월 7일,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에서 있었던 '이오덕 권정생 선생님을 되새기는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 태어나신 84주년 기념하여 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이 30년을 주고 받은 편지를 읽으며,
두 분이 남긴 뜻을 어떻게 이어받아 살아가야 할까를 생각하는 모임입니다.
두 선생님 시에 백창우 선생님이 곡을 붙인 노래도 배웠습니다. 우리말 노래 배우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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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이 30년을 주고 받은 편지 이야기.

아래 글은 2003년 9월 13일, KBS에서 방영된 <아름다운 유산, 이오덕의 편지>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권정생과 세상 사이의 길은 그의 집앞에 난 길만큼이나 좁고 가늘다.
그는 세상 밖에 있는 사람 같았다.

세상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던 이 길로 어느 날 한 벗이 찾아왔다.
그로부터 권정생의 편지가 시작됐다.

바람처럼 오셨다가 많은 가르침을 주시고 가셨습니다. 일평생 처음으로 선생님 앞에서 마음 놓고 투정을 부렸습니다. 출생지가 남의 나라였던 저는 여지껏 고향조차 없는 외톨박이로 살아왔습니다. 아홉살 때 찾아온 조국이 왜 그토록 정이 들지 않는지요. 늘 소외당한 이방인이었습니다. 선생님을 알게 되어 이젠 외롭지 않습니다.

찾아간 이는 이오덕이었다. 이오덕이 생명부지였던 권정생을 찾아간 건 한 편의 동화를 읽고 난 직후였다. 조그만 기독교 잡지에 실렸던 <강아지 똥> 이라는 동화 한 편.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 보이는 강아지똥 한 줌이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거름이 되어 민들레 꽃으로 피어난다는 얘기다. 동화는 세상에 쓸모 없는 것들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권정생의 이 동화는 이오덕을 감동시켰다. 당시 이오덕은 40대 중반, 이미 55년에 진달래꽃이라는 동시로 등단했고 71년에는 동화와 수필이 동시에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주목받는 아동문학가로 자리잡은 중견이었다.

이오덕은 72년 가을 권정생을 찾아간다. <강아지똥>이라는 동화 한편이 그의 길을 재촉했다. 그때 권정생은 안동의 작은 교회에 머물고 있었다. 권정생은 회복이 어려운 전신결핵 환자였고 그 몸으로 새벽마다 종을 치고 살아가는 종지기였다.

권정생의 나이 36, 이오덕과는 12년 차이었다. 이오덕은 권정생의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 때 첫 인상을 이오덕은 "다만 동화를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고 표현했다.
 
이오덕은 산골 초등학교의 교사였다. 두 사람의 삶은 아동문학 속에서 만났고 30년간의 편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오덕 선생님,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떳떳함만 지녔다면 병신이라도 좋겠습니다. 양복을 입지 못해도 장가를 가지 못해도 친구가 없어도 세끼 보리밥만 먹고 살아도 나는, 나는 종달새처럼 노래하겠습니다.

답장도 이어졌다. 12년간의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이오덕은 권정생에게 단 한번도 하대한 적이 없었다. 존경과 우정은 정중하고도 간절했다.

산골에 있어도 할미꽃 한번 못보고 진달래 한번 찾아가보지 못하는 일과입니다. 산허리에 살구꽃 봉오리가 발갛게 부풀어 올라 아침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괴로울 때마다 선생님을 생각해 봅니다. 이번 여름 방학에는 꼭 가 뵙겠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좋은 작품을 써주시길 빕니다. 서울서 원고료 온 것이 있길래 만원 부칩니다. 보태어 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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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인 73년 이오덕은 권정생의 신뢰에 화답이라도 하듯 <무명저고리와 엄마> 라는 작품으로 신춘 문예에 당선된다.

권정생은 여전히 가난한 종지기였다. 새벽마다 종을 치며 동화를 한 편 한 편 써나갔다. 권정생이 글을 쓴다는 것은 거의 사투에 가까웠다. 약도 듣지 않는 전신 결핵. 그 몸으로 원고지 한 장을 쓰자면 열번도 더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해야만 했다.


십여일 동안 몸이 불편했습니다. 병원에 가보면 영양 섭취를 많이 하라고 합니다.
쓸데 없는 줄 알면서도 일년에 한두 차례는 병원에 갑니다. 종합진단, 투약, 심신 안정. 밥맛이 통 없습니다. 남한테는 보리밥이라도 잘 먹는다고 장담하지만 어머니가 무쳐주시던 무생채 생각이 자꾸 납니다. 고사리 무침도, 산나물도, 그리고 어느 핸가 살진 암탉을 잡아 찹쌀을 넣어 끓인 닭곰국이 꼭 한 주발이라도 먹었음 싶어요. 이것도 살아있다는 증거인가 보죠. 선생님 꼭 좋은 동화 쓰겠습니다.


권정생은 작품이 써지는 대로 이오덕에게 보냈다. 그러면 이오덕은 작품이 발표될 지면을 찾아다녔다. 권정생은 쓰고 이오덕은 발표하고 그 때부터 둘의 역할은 그렇게 정해졌다.

아동문학가협회에 기고한 지에는 고료가 나오지 않으니 우선 다른 잡지나 신문에 나올 수 있도록 뛰어 다니고 있습니다. 서울의 소년 조선이나 소년 한국등과 그 밖의 아동잡지를 알아봤지만 60매짜리는 실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구 매일신문에는 왠만하면 실어주겠지 기대하면서 대구에 내려와서 문화부를 찾아가 부탁했더니 거기서도 난색을 보였습니다. 워낙 제가 무능해서 이 모양이 되었으니 그저 용서를 바라고 싶습니다.

저 때문에 너무 애쓰지 마시길 바랍니다. 올해도 보리밥 먹고 고무신 신으면 너끈히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가난한 것이 오히려 편합니다. 며칠 전에 시내에 나가 원고지 천장을 사왔습니다. 죽기 전에 써야 할 것을 어서 써야겠다고 자꾸 초조해집니다. 아까부터 소쩍새가 자꾸 웁니다.

동화 한 편 더 보내 주시면 상경하는 길에 어느 잡지에나 싣게 되도록 하겠습니다. 권선생님의 작품집이 출판되도록 해야 할 것인데 며칠 밤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여러가지로 선생님을 돕고 싶은데 저의 능력이 부족해서 뜻대로 안됩니다.


 이오덕은 왜 그토록 권정생을 알리는 일에 자신을 바쳤던가? 그것은 당시의 아동문학에 대한 이오덕의 문제 의식에서 출발했다. 이오덕은 평생을 잘못된 아동문학과 싸운 사람이었다.

"아이들이 쓰는 동시가 있습니다. 교과서에서도 동시라고 하고, 동시 쓰는 방법을 가르치는데요,
거울은 거울은 바보..
그림자는 그림자는 바보..
이런 글은 아이들의
생활과 동떨어진 머릿속에서 쓴 글입니다."

이오덕의 대안은 아이들이 쓴 글이었다. 아이들의 글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한 자 한 자 설명을 붙였다. 그는 아이들이 직접 쓴 글이 얼마나 아름다운 동시가 될 수 있는지 증명해 낸 사람이었다. 평생의 보물로 여긴 아이들의 글과 그림들, 이오덕은 한 장 한 장의 글과 그림을 모아 그것을 책으로 엮어 냈다.


이오덕의 글쓰기 교습법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여기저기에서 아이들의 문집
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작은 문집들이 만들어 질 때마다 이오덕은 일일이 읽어보고 장문의 감상문을 보냈다.

"얼마나 저는 기분이 좋았는지 모릅니다. 인쇄 상태도 희미하고 그랬는데 겉모양이나 그럴 걸로 보면 문집이라고 봐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아이들의 글 하나 하나,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 끼어 있는  아이들이 손으로 그린 그림 이런 것을 보시고는 칭찬을 해주셨는데 "<이 섬에서 크는 나무>는 역사적인 문집입니다." 이렇게 평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이런 편지를 받고 그 힘으로 해마다 꼬박꼬박 한차례에서 서너차례까지 학급 문집을 펴냈습니다."

"닷새만에 소포가 하나 왔습니다. 소포를 열어 보니까 선생님이 원고지에 6~70장 되도록 편지를 써주셨습니다. 아이들 글 하나하나에 대한 비평, 이 편지를 받고 그 자리에서 꿇어 앉았습니다. 이런 분이 계시구나..."

- 이오덕 선생님의 감상문을 받은 선생님들-


글이라고 하는 것은 전문적이고 특별한 사람이 아름답고 특별한 이야기를 화려하고 예쁘게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을 바꿔 놓으신 분. 삶과 동떨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쉽고 진솔하게 쓰는 것.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다.

이오덕이 말년까지 애정을 가지고 헌신했던 분야도 바로 어린이 글쓰기 교육이었다. 그는 움직이기도 힘든 몸을 이끌고 교사들의 모임, 글쓰기 연구회참석했다. 글쓰기 연구회는 이오덕의 교습법에 따라 아이들을 가르치고자 하는 모임이다. 이오덕이 뿌린 씨앗은 이제 국어 교육의 정석이 됐다.

이오덕이 평생 강조해 온 것은 삶의 글이었다. 지식의 글이 아닌 삶의 글. 40대 어느 날 이오덕은 권정생에게서 그 희망을 보았고 평생 그 희망을 지켰다.

남들이야 무슨 말을 하든 저는 선생님의 작품을 참으로 귀하고 값진 것으로 아끼고 싶습니다. 우편환으로 칠천원 붙여 드립니다. 우선 급한대로 양식과 연탄 같은 것 확보하십시오. 요즘 출판 사정이 악화된 것 같은데 어떻게 해서라도 선생님 책이 나오도록 하겠습니다. 이 편지 써두고 인편을 기다리다가 안되어 오늘 전신환으로 돈을 부쳤습니다. 저는 이번 3월 1일자로 전근이 되어 또다시 산골로 옮겨 왔습니다. 춘양서 한시간 이상을 걸어 재를 오르고 산등을 타고 걸어야 하는 벽촌입니
다. 선생님을 생각하면 불편이고 뭐고 너무 사치한 소립니다. 선생님이 계신 안동에서 더 멀리 떨어지지 않게 된 것이 다행입니다. 저도 선생님을 결코 잊지 않고 살아가려 합니다.


이오덕은 권정생의 책을 내기 위해 일요일마다 서울을 오갔다. 그는 마치 외판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권정생의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 다녔다.

지금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 중입니다. 4월 3일 밤에 서울에 도착해서 이튿날 계몽사에 가니 전에 맡겨 놓은 장편 동화를 검토도 못했다 하면서 미안해 합니다. 아동 책이 통 안나가서 일체 출판을 못하고 있다고 해서 원고를 도로 인수했습니다. 다시 어디 편지로 교섭해서 연재라도 할 수 있도록 힘써 보겠습니다. 일전에 소년 조선에 가서 선생님 동화 연재를 부탁했더니 8월쯤 가서 다시 얘기해 보자고 했습니다. 기별 오는 대로 편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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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74년 권정생의 첫 동화집 <강아지똥>이 나왔다. 그 책으로 권정생은 제 1
회 아동문학상을 수상한다. 책 출간은 권정생에게 얼마간의 여유를 주었다. 그러나 가난과 결핵으로 인한 고통은 여전했고 그는 여전히 가난한 종지기였다.

모두가 가
난한 시절이었고 동화책의 판매는 신통치 않았다. 권정생도 이오덕도 그런 건 개의치 않았다.




백만명의 독자보다 단 백명의 가난한 그러나 슬기로운 어린이들이 읽어준다면 더 기쁘고 보람있는 일이죠. 부디 몸조심하시고 글 너무 쓰지 마시고 쉬시도록 바랍니다. 선생님은 좀 더 오래 사셔야 합니다.



권정생의 동화집은 계속 발간됐다. 가난한 무명 작가와 중견의 아동문학가가 만나
이뤄낸 성과들이었다. 그렇게 권정생이라는 작가는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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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은 권정생의 작품만이 한국 아동문학의 희망이라고 봤고 그것을 지키는 일이 자신의 의무이며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래서 권정생 선생님 세상에 알려지고 그랬다고 생각 안합니다. 훌륭한 작가는 결국 드러나기 마련이죠. "

이오덕이 권정생을 그렇게 최고의 작가로 여긴 건 그가 바로 삶의 글을 쓰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슬픈 나막신>에서 권정생은 자신의 유년 시절을 담았다. 권정생은 37년 도쿄 변
두리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식민지 이주민의 생활을 처참했고 그 때 기억은 평생
동안 권정생을 따라다녔다.


우리집은 아버지께서 주워다 놓은 쓰레기가 뒤란 처마밑에 꽉꽉 쌓여 있었습니다. 그 퀴퀴한 곰팡내는 아직도 내 코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동경 거리를 쓰는 청소부 아버지, 열두살 짜리 누나도 공장에 나갔다고 했습니다. 집안은 언제나 비어 있었습니다. 몸서리쳐지도록 무섭고 지루하고 쓸쓸했던 나날이었습니다. 전쟁에 시달리던 당시를 회상하면 지금도 땀이 흐릅니다.


권정생은 해방 이듬 해 귀국한다. 아홉살이었다. 집안은 여전히 가난했다. 결핵의 증세가 시작된건 열아홉. 가난은 병을 키웠고 제때 치료하지 못한 결핵은 평생 그를 따라다니는 천형(天刑)이 됐다. 이오덕은 권정생의 그런 삶이 불행했던 우리 현대사 그 자체라고 봤다.

혹 자신의 체험을 그대로 쓰는 수기같은 걸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이 말은 선생님이 동화작가로 적당치 않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선생님이 살아오신 역사는 세상 사람들에게 알릴 보람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보고 문학이나 자서전 같은 것인 훌륭한 문학 작품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화를 쓰시는 것이 선생님의 본 길이고 다만 그 길에 전념하기 위해 남은 생명을 바치시는 선생님인데 행여 마음을 어지럽히지는 않았는지 죄송합니다.


권정생은 <몽실언니>로 화답했다. <몽실언니>는 불행했던 현대사를 관통했던 그 자신의 삶이었다.

 <몽실언니>는 우리가 묻어 두고 싶었던 아픈 기억들을 모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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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집어 낸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도망가는 어머니, 의붓 아버지 밑에서 천덕꾸
러기가 되어 버린 몽실이, 몽실이는 절름발이가 된 채 쫓겨나고 만다.
가난해서 오
직 가난해서 벌어진 모든 일. 전쟁터에서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아버지는 새어머니를 들이고 이내 배다른 동생 남남이가 태어난다. 얼마 후 새어머니 북촌댁마저 숨을 거둔다.
몽실이는 식모 살이를 하며 남남이를 거둬 먹인다. 아버지는 머슴 살이
를 떠나야 했다. 그 와중에도 전쟁은 계속 되고 몽실이의 삶은 위태롭게 진행된다. 친어머니마저 세상을 뜬다. 의붓아버지와의 사이에서 난 영순이와 영득이까지 이제 몽실이의 몫이 됐다.
병든 아버지를 고쳐 보기 위해 자선 병원을 찾아가지만 돈
있는 사람에 밀려 거리에서 숨을 거둔다. 도무지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삶. 그래도 몽실이는 살아야 한다고 사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몽실이는 그렇게 가장 전형적인
한국의 삶을 산다.

원고를 쓰는 내내 권정생은 고통스러워 했다. 몽실이의 삶은 기억하기도 싫은 그 자신의 삶이었다.

이틀간 가까스로 원고 스무장을 썼습니다. 얘기가 비참해서 쓰는 게 고통스럽습니다. 비록 아동소설이지만 6.25의 참상을 가볍게 다룰 수 없습니다. 지금 몹시 머리가 아픕니다.

선생님이 장편을 쓰신다고 좋으면서도 저는 건강이 무척 걱정됩니다. 여기는 어제 아침에 벌써 된서리가 내리고 얼음이 꽤 얼었습니다. 그 허술한 방에서 무더운 여름을 지나게 하고 또 겨울을 보내도록 해서 참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사람같지 않게 살고 있는 내 자신이 한없이 미워집니다. 가보지 못해 늘 괴롭습니다.


정작 권정생을 괴롭힌 건 따로 있었다. 몽실이가 인민군 청년을 만나 통일이 되면 편지를 하자며 약속하던 장면, 그 장면은 삭제돼 버렸다. 제5공화국 시절이었다. 모든 원고는 검열됐고 두사람은 용공주의자로 몰렸다. 이오덕, 권정생 같은 북한을 지지하고 찬양하는 아동문학가가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 이런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이냐는 내용이 방송과 신문에 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몽실언니의 생명력은 그 어떤 폭력보다 강했다. 장편 동화 몽실언니는 개정판을 계속 내며 이제 한국 아동 문학의 고전이 됐다. 권정생의 동화에 대해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이들은 또 있었다. 그의 동화가 아이들에게 읽히기에는 너무 슬프고 어둡고 아프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분은 아이들이 정직한 삶의 이야기를 절대로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동심주의적으로 오해할 리 없다고 하셨다. 아이들도 역사 속에 실재했던 이야기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으며 어른들의 생각만으로 역사를 의도적으로 숨길 필요 없다.

제 동화가 어둡다고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만 저는 결코 제가 겪어 보지 못한 꿈같은 이야기는 쓸 수가 없습니다. 쓰려고 노력하지도 않겠습니다. 어쨌든 저는 앞으로도 슬픈 동화만 쓰겠습니다. 눈물이 없다면 이 세상 살아갈 가치가 없습니다. 산다는 것은 눈물 투성입니다. 인간은 한 순간도 죄짓지 않고는 살 수 없는데 어떻게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겠습니까. 결국 울 수밖에 없습니다. 울 수도 없다면 죽어야지요.


이오덕이 평생을 강조해 온 삶의 글을 바로 그런 것이었다. 이오덕은 묵묵히 권정생의 글을 조금이라도 더 발표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주말마다 서울을 오가는 것도 여전했다.
저 지금 상경하는 길에 우체국에 잠시 들렀습니다. 서울 가면 다시 선생님 동화집 내도록 해놓고 오겠습니다. 지금 그것때문에 가는 길입니다.


이오덕은 아이들을 믿었다. 아이들은 정직한 글을 알아볼 것이고 이오덕은 그것을 읽히고 싶어했다.

거기 일직 교회는 햇볕이 앉을 곳도 없는데 얼마나 춥습니까? 추위가 닥쳐 왔는데 어떻게 지내실지 걱정입니다. 걱정만 한다고 하니 가보지도 않으니 저같은 사람은 아무 쓸데도 없습니다. 선생님의 건강이 더
보리

보리 2009-11-19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고 출판의 빈 고리를 메우자. 수익이 나면 다시 책과 교육에 되돌리자. 보리출판사의 출판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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