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출판사 블로그

염라대왕에게 면담 신청이 들어왔다.

저승 감방지기가 머리 흐물흐물한 귀신 하나를 데리고 나타났다.

면담이 시작되었다.

"어디서 살다 왔나?"

"영국이요."

"왜 불려왔어?"

"못 먹을 고기 먹다가요."

"그 고기 이름이 뭔데?"

"광우병에 걸린 소고기요."

"그래서 머리가 그렇게 흐물흐물 녹아내렸다는 말이지?"

"예."

"그런데 나한테 볼일이 뭐야?"

"저 여기 저승에 온 게 너무 억울해요. 소식을 들으니, 나를 이렇게 만든 소귀신이 이 저승 소우리에 갇혀 있다더라구요. 그 소 만나서 따져야겠어요."

"따지긴 뭘 따져?"

"제가 저승에 올 때가 아닌데 왔거든요. 노부모 모시고, 학교 다니는 애들이 셋이나 되는데, 내가 여기 오고 나서 우리 집 거덜났어요."

딱하게 여긴 염라대왕이 소우리지기에게 그 소를 찾아 데리고 오게 했다.

머리에 구멍이 숭숭 뚫린 소가 힝힝거리면서 들어왔다.

염라대왕이 대질을 시켰다.

"너 이 사람 죽인 거 맞아?"

소가 눈을 꿈쩍꿈쩍하다가 풀 죽은 소리로 말했다.

"어쩌다 그렇게 됐구먼유."

"어쩌다라니?"

"글쎄, 염라대왕께서 아시다시피 우리 가문이 대대로 채식주의자 가문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 인간들이 우리를 빨리 살찌워서 빨리 잡아먹으려고, 온갖 항생제, 호르몬제가 뒤범벅된 유전자 조작 콩을 먹이다가 그것도 모자라 백혈병 걸려 죽은 닭고기, 폐렴 걸려 죽은 돼지 뼈다귀, 심지어 햇빛이 들지 않는 소우리에 앉지도 못하고 서서 지내느라 관절염 걸려 죽은 우리 새끼, 부모의 똥오줌 고름이 범벅이 된 몸뚱이까지 갈아서 우리에게 먹이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옛날에는 25년도 더 살면서 넓은 풀밭에서 채식을 즐기면서 농사짓는 사람들의 착한 벗 노릇을 하던 우리가 어느 날부터 난데없는 육식주의자로 바뀌어 3년을 못 넘기고, 도살장에 끌려가 이곳으로 직행하게 되는데 억울하더라구요. 그래서 내 몸에 함께 살던 박테리아요 바이러스들에게 원수 갚아 달라고 부탁했는데, 어쩌다 저 사람이 내 고기 먹었는가 보구먼유."

이 말을 들은 염라대왕은 입맛이 뚝 떨어졌다.

눈살을 찌푸리면서 둘 다 데리고 나가라고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곧 주방장을 불렀다.

"방금 나간 저 소, 앞으로 25년 동안 저승 풀밭에 방목시켜. 그리고 난 뒤에 그 고기 내 식탁에 올려. 알았어?"

이어서 염라대왕은 곧 저승차사 한 명을 불렀다.

"너 당장 엠비시(MBC)인지 '명박씨' 무르팍인지네 가서, 사장 좀 데리고 와. 그 친구 미국산 소고기 좋아한다는데, 저녁 같이 먹고 싶어."

 

<개똥이네집> 2011년 10월호에서

편집 살림꾼 지리소

편집 살림꾼 지리소 2011-11-02

古傳을 만들면서 苦戰을 면치 못하다가, 책 만드는 일에도 사는 일에도 고전하고 있는 困而知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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